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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Nov 25. 2024

나에게 첫사랑이란,

사랑, 남사친, 그리고 운명에 대해.


다들 첫사랑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첫 연애 상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

저는 첫사랑의 기준을,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 준 상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연애를 해본 적도 지금은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첫사랑의 기억만큼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게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그 애의 기억이 가물가물 해져서 글로나마 추억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에요. 그냥 추억팔이 느낌으로 봐주셔도 됩니다.

그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의 첫사랑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13년 ,

초등학교 3학년, 나는 그 애랑 같은 반이 되었다.

같은 반이 된 것은 완벽한 우연이었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그 애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

그것보다 나는 1학년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연주(가명)와 3년 연속 또 같은 반이 된 것이 너무 행복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 애랑 그렇게 접점이 없었나 싶을 정도다. 하긴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으니, 기억에 없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14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나는 또 그 애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연주랑은 초등학교 들어오고 처음으로 반이 떨어지게 되었다. 바로 옆반도 아니었다. 나는 이제 연주 말고 다른 친구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 그 사실만으로 충격이었다. 나는 여러 명 친구를 사귀는 타입이 전혀 아니었고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가 많았다.

​​​

연주랑 다른 반이 된 후로는 새로운 친구 사귀기 바빴는데, 생각해 보니 그 애를 인식하기 시작한 건 동생 때문이었다.

동생 친구의 형이 그 애였거든. 동생친구는 내 동생이랑 유치원 때부터 알아서 이미 좀 친한 상태였다.

여기서 잠깐 그 애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그 애 이름은 태훈(가명)이었다. 남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내 남동생이랑 나이 같은 친구였다. 외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발...이었다는 것이다.

엄청 긴 건 아니고 그냥 단발보다 조금 더 긴, 근데 일정하게 단발처럼 긴 게 아니라 가운데 쪽만 불규칙하게 길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흑발이었지만 갈색이 섞여있었다. 얼굴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양아치 같은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나이 때 애들은 다들 그런 얼굴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아마 그들 중 한 명이었나 보다.​​​

태훈이는 인기가 많았다. 말 그대로 인싸였다. 사교성도 좋았고 축구, 야구 등 운동을 잘했고, 쾌활하고 그런 애였다. 공부는 못 했지만 그 점을 이용해서 친해지려고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고. 키는 솔직히 기억 안 난다. 그냥 또래정도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니까 키까지는 잘 안 봤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태훈이를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많았다.

그래서 뭐 질투 같은 걸 했냐고?

그런 드라마 같은 서사는 여기 없다. (ㅋㅋㅋㅋ) 말했다시피 난 그 애의 존재조차 몰랐고, 아마 그 애도 그랬을 것이다.

​​​

쨌든 그 애를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동생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애가 그 애 동생이랑 자주 놀았는데 (왜냐하면 둘 다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친했던 것 같다) 거기에 내 동생이 끼어서 논 적이 많은 것 같다.

그날은 동생이 나간 지 한참 지났고 밥 먹을 시간인데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엄마가 데려오라고 하셔서 동생이 있는 그 애 집으로 갔다. 그 애랑 나랑은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엄청 가까이 살았다.

거기서 그 애를 처음 제대로 봤다. 나는 같은 반이었어도 얼굴이랑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안면인식장애 있는 건 아니고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기억 못 한다. 그래서 사실은 그 애를 못 알아봤다. 아마 그 애도 나를 못 알아봤는지 내가 '000(남동생 이름) 누나인데, 동생 데리러 왔어.'라고 하니까 공동 현관문을 그냥 열어줬다. 근데 동생이 장난을 치는 건지 나를 놀리는 건지 (아마 둘 다겠지 싶은데) 내가 그 집 안에 갔는데도 동생이 나오질 않았다.

바로 문 앞까지 왔는데 벨을 계속 눌러도 나오질 않았다. 안에서는 뭐 하고 노는 건지 우당탕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리고 몇 분 뒤에 태훈이가 장난식으로 웃으면서 나왔다.

"어? 너 나 알지?"

"...?"

그 애는 나오자마자 나를 아는 듯이 쳐다봤고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때는 누군지 몰랐다.

"맞네. 너, 나랑 같은 반이지? 네가 쟤 누나구나?"

"어, 이제 집에 가야 해서 데리러 왔는데."

"야, 00아! 누나 왔다! 잘 숨어!"

"...???"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 애는 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벨을 여러 번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남동생이 나왔다. 속으로는 ‘아놔 이것들이 장난하나.‘ 이런 생각이었지만 그 애는 장난식으로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이러면서 웃었다.

그렇게 그 애와의 첫 만남은 이게 끝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같은 반이긴 했지만, 사실 접점이랄 게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애를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다들 그 애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시선이 그 애에게 닿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 애 집을 간 이후로 그 애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랑 우연히 같은 모둠이 되었다.

우리 반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었다.


모둠 4명끼리 숙제를 다하면 병아리 한 마리, 지각하지 않으면 한 마리,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 한 마리, 이런 식으로 한 달 동안 병아리를 가장 많이 모은 모둠만 뽑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뽑기에는 여러 혜택이 있었다. 희귀템으로는 원하는 짝꿍이랑 앉기, 청소 하루 면제, 숙제 면제 같은 것들이 있었다. 숙제를 성실히 하거나 칭찬을 많이 받으면 뽑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나는 뽑기를 많이 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 하나, 원하는 짝꿍이랑 앉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뽑기 기회가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태훈이는 공부를 잘 못했다. 못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었다. 숙제도 안 하기 일쑤였고, 수업 시간에도 자주 떠들어서 경고를 받은 적도 많았다. 너무 슬픈 일이지만, 태훈이랑 모둠이 되면 뽑기 기회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태훈이의 공부를 도왔다. 사심이 있었냐고? 당연하다. 나는 태훈이를 인식한 순간부터 어느새 좋아하고 있었다. 수학익힘책 제일 빨리 풀면 아직 못 푼 친구를 가르칠 수 있어서 일부러 제일 먼저 빠르게 풀고 태훈이를 가르치기도 했고, 숙제가 뭐였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려주고 쪽지 시험도 알려주고, 어쨌든 최선을 다해 도왔다. 모둠을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티가 날 정도였다. 근데 정작 태훈이는 그런 호의적인 태도를 많이 겪어봤다는 태도였다. 나도 그것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태훈이는 원래 인기 많은 애였으니까.

결국 우리 모둠은 1등을 했고 나는 '원하는 짝꿍이랑 앉기'를 뽑게 되었다. 여기서 모두가 내가 '태훈이'랑 앉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친한 친구 중 한 명과 같이 앉았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짝꿍으로 태훈이를 찍어버리면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걸 밝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내 동생이 놀러 갈 때 동생을 보러 간다는 것을 핑계로 물이랑 아이스크림 같은 걸 챙겨 갔다. 동생이 태훈이 남동생이랑 놀러 가는 날에는 거의 대부분 태훈이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훈이를 보려고 일부러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척하면서 태훈이가 운동하는 걸 구경했다. 여름이었는데 놀러 나가는 날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백할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때는 이게 사랑인지도 몰랐고 그냥 나 혼자 이렇게 바라만 보다가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태훈이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꼈을 때는 내가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간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에 이사를 갔다. 작별인사 따위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았고 내가 전학 가고 이사 간다는 사실을 아는 건 담임 선생님과 친했던 친구들 그리고 연주랑 예훈이(가명, 이따가 설명) 뿐이었다. 당연히 태훈이는 몰랐다.

그 후로 나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가끔 태훈이 꿈을 꿨다. 뭐랄까. 못 보니까 더 그리운 느낌이랄까.

​​

어떤 남자를 봐도 태훈이가 생각났다. 혼자 짝사랑을 5년 넘게 한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완벽한 이상형도 아니고 분명 초4 이후로 만난 적도 없었는데, 왜 나는 태훈이를 잊지 못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긴 왜 좋아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아마 내가 태훈이랑 있을 때 진심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이 생겨서 계속 되새김질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걸 짝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이고.

하지만,,,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저 그런 첫사랑 이야기였다.


-

the end



















다른 이야기, 남사친


나에게 남자란.

아빠, 남동생 그것뿐이었는데.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남사친, 예훈(가명)이가 있다.

예훈이랑도 연주랑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그리고 예훈이랑 연주는 초4 때도 같은 반이어서 4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사실 예훈이랑 첫 만남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어쩌다 연주랑 예훈이랑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3 이서 정말 친했던 것 같다. 진정한 남사친이랄까.

예훈이는 내 기억으로 되게 몸이 약했고 얼굴이 하얬고 피아노를 쳤었다. 예훈이네 집에 몇 번 놀러 가서 떡꼬치 먹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예훈이는 참 착했다. 맨날 연주랑 나한테 구박받고 놀림당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마 내가 이사 가지 않았다면 계속 친구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남녀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사귄 친구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에게 평생 진정한 남사친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슬프긴 하다.












또 다른 이야기, 운명


난 남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아주 나중에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만 기억한다. 고백을 받았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걸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라 난 아직 0 고백 0 사귐이다.

쉽게 말해서 모태솔로인데,

분명 대학생 되면 다들 연애하는 거 아니었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만 보더라도 그건 절대 아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난 그냥 누군가를 사랑해보고 싶은 감정을 느끼고 싶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까마득하거든.

지금은... 사실 지금도... 아니 사실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 나타나주길 나는 항상 생각만 한다.

언젠가 나의 이상형이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나는 조금 한심하다.

얼마나 남자랑 얘기를 안 했는지 남자 동기랑 말을 할 때도 어색하고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고 사교성 있는 것처럼 구구절절 떠들어야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있다.

그래도 난 운명을 믿는다.

믿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아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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