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시작을 위한 글
나는 '정치업 종사자'였다. 20대의 출구에서 30대의 입구로 접어들던 2017년 12월, 정치업이 내게 왔다. 정치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꽤나 노력했고, 당연으로 보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그렇게 우연과 당연 어느 사이에서 국회의원 보좌진이라 하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30대의 전반기를 보냈다. 애써 보좌진이라 쓰지 않고 정치업 종사자라 한 것은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공무원에 가둬두지 않기 위해서다.
'정치'가 아닌 '정치업'으로 표현한 것 또한 이유가 있다. 나 스스로가 정치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 이를(주로 국회의원) 다양한 측면에서 기술적으로 도왔다.
글을 써줬고, 유튜브 쇼츠를 기획했으며, 정책을 입안했다. 누구를 언제, 어디서 만나야 할지 조언했고, 심지어는 방송 토론에 대비해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까지 살펴줬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이 또한 정치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치업'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정치 행위'와 '정치 행위를 돕는 행위'를 구분 짓기 위함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정치업 종사자였다. 현재는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자연인(백수)으로 지내고 있다. 쉬는 동안 지난 6년 여의 기억들이 평범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2017년 12월부터 2024년 4월에 이르기까지 약 6년 여의 시간이 쉽사리 경험하기 힘든 경험들로 가득 찼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정치 영역 안에 있던 지난 6년 여의 나의 일상이 정치 바깥에 있는 이들의 일상을 추동한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리고 싶었다. 정치업에 종사한 이의 눈으로 정치를 나누고 싶어졌다.
하지만 유튜브를 하기에는 너무 준비할 게 많았고, 언론사에 기고를 하기에는 내 경력이 일천했다. 그래서 가볍게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그 시작으로 내가 보좌진으로 있으면서 남겼던 단 2개의 SNS의 글 중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정치와 정치업의 관계에 대한 나의 소신이 잘 묻어난 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 6년 여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 보려 한다. 그때그때 생기는 정치 현안들에 대한 정치업자로서의 나의 생각 또한 써나가 볼 생각이다.
서른 즈음, 내가 종사해 온 정치업의 기억들과 경로들이 내 글을 읽는 이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2년 4월 6월 SNS의 글
보좌진은 공개적으로 SNS에 글을 남기는 것을 꺼려합니다. 아니 싫어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요. 그 내용이 정치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생각이 '보좌하는' 혹은 '보좌해 온' 분의 생각처림 비칠까 봐 두렵고, 내가 속한 당에 누를 끼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쯤은 공인이 되어버린 제 자신의 선택적 업보라고 생각하고 SNS에 글을 남기는 행위를 지양했습니다.
본디 타고난 게 '생각나고, 느낀 것'은 한 음절 단어로라도 드러내야 속이 풀리는 타입인지라 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난 4년 동안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과 사고들을 꾹꾹 눌러뒀습니다. 답답함에 스스로를 가둬두는 게 옳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라도 뭔가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착잡함이라는 감정이 크기가 지난 4년 다른 어떤 날보다 큽니다.
정치를 아직은 좀 더 하셔야 할 분들이 정치를 그만두는 이 현실이 너무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생활정치가 거대담론을 대체했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고, 당에 대한 진심 어린 헌신의 결과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당이 어려울 때마다 찾아 쓰인 이들의 마지막이 희생과 퇴장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쓰리고 아픕니다.
점점 더 큰 정치인들은 품어내지 못하는 당의 크기가, 깜냥이 안 되는 이들의 장기자랑장으로 내몰리는 당의 모습이 서글픕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쓰일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도매로 묶여 취급되는 현실과 이에 부화뇌동 하는 당의 관성에 적잖이 섭섭합니다.
존경을 보이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참담하고 참담합니다.
공교롭게 4년 전 지방선거를 통해 저는 이 일의 입구에 들어섰고, 다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2년 전 선거 패배가 시작의 끝일 줄 알았는데 오늘이 진짜 시작의 끝인가 봅니다.
지난 4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원님과 의원님을 보좌해 온 선배님들 덕분에 분에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처음 2년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정확하게 사고하려 애썼고, 적확하게 대응하려 노력했던 2년이었습니다. 최고의 전략은 대중의 상식이고, 가장 어려운 것도 대중의 상식을 포착해 내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공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자기는 접어두고 당과 공을 우선해야 하는 치열함 속에 스스로를 내모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 귀한 줄 아는 이가 정치를 하는 게 맞다'는 지극한 상식이 얼마나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지를 증명해 준, 나중의 준거가 되어줄 2년이었습니다.
상상력의 크기가 정치의 크기이고, 그것을 구현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게 정치력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쌓아낸 2년이었습니다.
행정이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기억을 남겨주시고, 경험을 심어주신 선배님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떠나가는 이들이 새 시대, 새 소명에 밀려나는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그릇을 담아낼 역량이 작아진 우리들의 탓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상상하고 꿈꾸는 이들이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적 퇴보가 이들을 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로움조차도 담아내는 선배들의 그릇에 제 역량이 한참을 못 미치는지라 머리만 아프고 속만 쓰립니다. 그 아픔과 쓰림만큼 오래 존경하겠습니다.
글에 이것저것 담는 것을 싫어하고, 정제되지 않은 문장은 내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리가 잘 안 되네요. 지금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제 문장력의 한계 탓이겠지요.
말이 많았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참 형편없는 글이네요. 남는 것이라곤 참담함, 서글픔, 비통함의 흔적들 뿐이네요. 그래도 이 글을 읽는 수고러움을 감수하시는 분이 혹여나 계시면, 저의 마음만큼은 진심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돈 줘서 일하면 '사장', 돈 안 줘도 일하면 '대장'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모신 시간은 2년 남짓이지만 끝까지 대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책 한 구절로 갈음하겠습니다.
'상상 속 사회와 정치가 현실의 사회와 정치를 만나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변화가 시작된다. 만약 상상이 멈춘다면 그 사회와 정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