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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Mar 22. 2024

고3 학부모총회에 다녀오다


딸이 고3이 되었습니다. 수도권 일반고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학부모 총회였습니다. 주변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도 아니고 아이에 대해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총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들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엄마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운 반응도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회 활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부모 총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엄마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학교 행사에 참여함으로 아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또, 생활하는 공간을 직접 경험하고,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눔으로 아이의 말에 더 공감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조금은 극성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개별 면담 시간도 잡았습니다. 사실, 아이가 조금 더 적극성을 띠기를 바라는 마음에 담임선생님께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려 의도했습니다.



총회 전 교실에 도착해 담임 선생님을 만난 시간을 15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교직 17년 차이며 국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는 파란 바지 정장 세트가 몸에 잘 맞는 날씬한 분이셨습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동그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것이 대화를 먼저 시작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첫째 아이라서 고등학교 3학년 학부모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너무도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실 일은 없어요. 아이가 공부하는 게 다죠. 성적을 올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이에게 아침 자습도 해야 한다고 권했어요. 앞으로 100일간은 최대한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적이 애매한 선이기 때문에 삐끗하면 지역이 바뀌어요. 교과전형으로 생각하면 성적 올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적이 중요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동안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며 노력도 했고, 지난 방학에 사설 상담을 통해서 생기부 종합 전형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터라 교과전형이 답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아이가 생활기록부를 만들겠다고 밤새워 노력하고 고민했는데, 교과전형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건가요?"


"아이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학생이지만, 특별히 리더십을 드러낼 것이 없기 때문에 생활기록부 내용도 경쟁력이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교과전형이라도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실 안타깝지만 우리 반에서 그 정도의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냉정한 대답이었습니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이겠지만 단호한 말씀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의욕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는 쓰린 가슴을 감추며 겉도는 이야기를 나누다 짧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총회가 이루어지는 강당에 앉아서도 잠깐 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겨우 눈을 뜨고 총회에 집중하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학교생활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 관리'를 강조하셨습니다. 다시 혼란스러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순간 손을 번쩍 들고 '생기부종합전형과 교과전형 합격률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요?'라고 질문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총회가 끝나고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느 고3과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은 아이였지만, 오늘만은 제가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잠깐 동안 많이 미화해서 말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런 것엔 재주가 없어 결국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이미 담임선생님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어서인지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과를 고집하지 말고 우선 대학에 들어가면 길이 보인다'라고 설파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확고한 진로를 생각한 후 다방면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던 아이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과를 하는 것도 그 과에서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데 전혀 관심 없던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급기야 대학에 가기 싫다는 말도 내뱉었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집 앞 슈퍼에 도착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라볶이를 해서 먹기로 했습니다. 떡과 어묵도 사고 떨어진 당을 충전하기 위한 아이스크림도 잔뜩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 중3인 동생과 다시 한번 설전을 벌이며 대한민국 입시 제도에 대한, 고3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길을 잃은 것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은 지금 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성적표를 받아든 후에 어떤 방향으로 지원할지는 다시 고민하고 결정해야겠죠.



어찌 되었건 오늘 학부모 총회의 목적 두 가지는 달성했습니다. 하나는 아이와 넘치게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또, 하나는 원하는 동아리를 꾸려 만들어가는 적극성을 북돋은 것입니다. 의외로 담담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를 보며 오히려 제 마음이 안심되었습니다. 수행평가 대비를 위한 책과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깊은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아이의 생각에 제동을 걸기보다 조언해 주며 더 넓게 펼치기를 응원했습니다.



앞으로 100일 남짓의 수험생활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지수입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고, 성적에 따라 미래가 정해지는 것도 맞습니다. 점점 엄마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때와는 다른 복잡한 대입 과정에 두려움도 크지만, 아이를 믿고 긍정적인 마음을 나눠야겠다 생각한 하루였습니다. 혹여 원하는 곳에 입학하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 수 있는 단단한 아이가 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 될 것 같습니다.



© johnishappysometime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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