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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Feb 15. 2024

하마터면 멈출 뻔했다.

개 버릇 남 못준다지만

글쓰기라는 영역에 발을 들인 지 5개월이 되었다. 혼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한동안 너무도 재미있었다. 글을 쓰려니 책도 읽게 되고 북돋는 말들에 고무되어 방방 뜨는 시간을 보냈다. 글쓰기 기초반 수업에서 브런치 스토리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작하는 우리에게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는 것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지만 편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 같은 것이었다. 그저 있다는 것에, 생각으로 A4 바닥을 채울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글을 써야지 했다.


내게도 몇 개의 글이 쌓였을 때, 브런치 스토리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어떤 글이든 칭찬이 오고 가는 글쓰기 모임의 동기들 덕분이었을까, 온라인 모임의 이름 모르는 누군가가 먼저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서였을까. 뭐라도 하기만 하면 이룰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신청하기'를 누르게 했다. 덜컥 합격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 스토리라는 공간은 너무나 낯설었다. 예쁜 표지에 이야기의 주제를 잡아 브런치북이란 것을 만들어 놓았고, 연재라는 육각형이 붙어있는 것들도 있었다. 모두들 컴퓨터에 글을 한 바구니씩 저장해 놓고 글을 올리고 있구나 생각했다. 머뭇거림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했다가는 정리되지 않은 연습장이 되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나도 글을 모아보자 생각했다. 내 글들의 콘셉트도 잡고 몇 편의 글도 미리 써 두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마침 신청해 놓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어느 정도 완성이 되는 날 나의 브런치 생활도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는 글쓰기 수업에서 첫 번째 글을 평가받는 날이었다. 브런치 스토리의 연재북을 구상하고 첫 시작을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나름 고심해서 쓴 글이지만,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는 존 발레리의 말을 빌어 스스로 마감을 지었다. 내 브런치의 첫 글이 될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급한 성격에 얼른 마무리 짓고 제출했더니, 내가 첫 번째였다. 작가님께서 스스로 소리 내어 읽어달라 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있는데, 내 글을 읽으려니 저절로 바이브레이션이 추가되었다. A4 한 장이 넘는 글을 읽는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줌 창 위로 글을 펼쳐놓았기 때문에 내 글을 듣는 학인들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게 나았다. 떨리는 시간이 끝나고 작가님의 조언이 시작되었다.



첫 문단이 매력적이지 않다. 예를 든 이야기는 당신만 아는, 평범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재미도 없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 자신의 평생을 한 편의 글에 펼치려 하지 마라. 에피소드는 하나만 잡아서 제대로 파고들어라.

정작 중요하고 궁금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구성을 뒤집어서 궁금증을 더하라.

제목을 바꿔라....



물론 작가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필요한 조언들을 부드럽게 해 주셨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열심히 받아 적었지만 기분은 가라앉았다. 마지막에는 '잘 쓰셨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하셨지만, 왠지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 순서라 필요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셨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이지만 공책에 끄적여 놓은 글씨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내 뒤를 이어 다른 학인들의 글도 합평이 이루어졌다. 참 잘 쓴 글이라 칭찬받은 글은 내가 보아도 참 잘 썼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자세하게 펼치며 말하고자 하는 내용까지 연결 짓는 자연스러움. 마지막 문단에 방점을 찍는 깊이 있는 생각. 적절한 건너뜀으로 지루하지 않게 만든 구성까지. 배울 것이 참 많았다. 평가를 받는 학인의 얼굴도 수업 마칠 때까지 어찌나 맑고 예뻐 보이던지. 반면 컴퓨터에 비친 내 모습은 한 없이 초라해 보였다.

"오늘 피드백받은 글은 다시 수정해서 올릴까요? 저는 다시 검사받고 싶어요."

수업이 끝나기 전 한 학인이 말했다. 다시 고치고 고치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일상이고 당연한 일임을 알지만, 지금 가라앉은 기분으로 당장 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제 버릇 남 못준다'라고 작은 돌부리에 또 주저앉아 버렸다.


언제나 그랬다. 가지고 있는 재주가 발현되어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일 때까지는 신이 났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성장하지 못해 넘어야 하는 산이 생기면 싫은 소리 듣는 것이 또 싫어 그 앞에서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이 만큼밖에 안 되는 거지' 알면서도 또 이러고 있다. 칭찬받았을 때는 들떠있다가 당연히 들어야 하는 조언 마디에 가라앉아 멈추어 있는 자신이 더 힘들다.


거실에 나와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분위기를 잘 읽은 남편은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속상한 마음을 글쓰기 동기들에게 비쳤다. 언제나 긍정적인 말로 용기를 주는 한 친구가 어김없이 나에게 필요한 말이 담긴 책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어쩜 내 마음을 이렇게 잘 보듬어주는 글일까' 생각했다. 오를 수 없는 나무에 매달려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그 여정이 의미 없지는 않다고 하니 주저앉아 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오를 수 없는 나무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기 마련이다.
다만 닿을 수 없다고 해서 공허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린 오르지 못하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나머지 삶의 여정을 떠나기도 한다.
보편의 단어/ 이기주



동기의 처방에 반짝 정신이 들었지만, 피곤한 몸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게 했다. 병원 진료 때문에 집에 와 계시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출근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내쳐 누워있고 싶었지만, 뭐라도 해야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아있는 무를 썰어 뭇국을 끓였다. 들기름에 달달 볶으니 고소한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돌부리에 넘어져 주저앉았다고 푸념하던 것이 몇 시간 전인데 고소한 향에 식욕이 돌아오니 나도 참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그릇 말아먹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글이 아니라 '시작하는 용기'이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려고 했던 내 마음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있었다. 완벽할 것 같았으면 애저녁에 글 쓰는 사람이라고 명함을 팠겠지, 여기에서 글 하나 올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겠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쓰면서 정리하고 힘을 얻기 위함이 크다. 지금도 글을 쓰며 주춤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고 필요한 것이 '용기'임을 깨달았으니 이제 실천해 보자.


'발행이다!'


물론 피드 받은 글도 고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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