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hoose you.

비로소 알게된 것

by 오롯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추운 겨울, 맑은 날 새벽,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날로부터 3일이 지난 후였다. 세상은 맑고 깨끗하고, 추웠다. 차가운 바람이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염치없이 추위가 느껴졌다. 염치없이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내 몸의 세포들은 살아있었고, 따뜻했다. 중환자실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그 이와는 다르게 나는 살아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음을 미안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그이의 생명을 걱정하고, 어쩌면 남겨질 우리를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고, 혹시 모를 장례의 절차도 생각해야 했다. 슬픔과 걱정, 두려움으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 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손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Sara Bareilles의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Sara Bareilles의 노래는 약간의 느린 비트의 노래들이 많았다. 오르막을 많이 달리는 나에게 너무 빠른 비트의 노래보다는 규칙적이고 약간 느린 비트의 노래가 좋았고, 어느새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그녀의 곡이 2~3곡 자리하고 있었다.

I choose you.

전주가 나오자마자 흑 하고 눈물이 터져나왔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소리 같은 따뜻한 건반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나의 남편을, 나도 모르는 만큼 아주 많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프게도 비로소 남김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Let the bough break, let it come down crashin'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떨어지게 내버려둬

Let the sun fade out to a dark sky

태양이 어두운 하늘로 사라져가게 내버려둬

I can't say I'd even notice it was absent

태양이 없다는 걸 알아챌 수도 없어

'Cause I could live by the light in your eyes

당신의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도 살 수 있으니까

I'll unfold before you

당신 앞에 펼쳐놓을께요

Would have strung together

함께 엮었을

The very first words of a lifelong love letter

평생 연애편지의 첫 단어들.


Tell the world that we finally got it all right

우리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잘 해냈다고 세상에 말해

I choose you

난 당신을 선택했어요.

I will become yours and you will become mine

나는 너의 것이 되고 너는 나의 것이 될 거야

I choose you

난 당신을 선택했어요.

I choose you

난 당신을 선택했어요.


계속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불안함으로 가득찬 눈과 친정엄마의 걱정스러운 낯빛을 마주할 수 없었다. 한발자국씩 떼기 시작했다.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염치 없이 흐르는 피는 심장을 거쳐 내 몸 곳곳으로 흘러갔다. 뻐근한 무릎을 지나 발가락 끝에 이르렀음을 느꼈을 때 숨소리에 섞여나오던 꺽꺽 거리던 흐느낌은 어느새 규칙적인 호흡으로 바뀌어있었고 머리는 다시 차가워져 있었다. 달리고 난 후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없이 산소호흡기를 단 채 생사를 오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빠를 잃기 일보직전이었으며 시부모님은 단장의 아픔을 겪고 계셨으며 친정부모님은 딸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렇지만 냉정을 되찾고 정신을 놓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보고 출근을 하고, 양가 부모님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닥쳐올 일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때 이상하리만치 냉정했던 것 같다.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매 초마다 했었다. 지난 몇년간 투병하는 아빠를 걱정하면서도 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구김살없이 자라온 아이들을 나까지 정신을 놓으면서 패닉에 빠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굳건하고 강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어야했다. 시부모님은 내가 야속했을지 모른다. 울고불고 실신하고 출근도 못하고 그래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게 지금도 미안하다.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제정신을 차리려고 했던 것이 미안하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훨씬 훗날에서야 보고 알게되었다. 나는, 우리는, 제대로 슬퍼했어야 했었지만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틀어막고,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한 채 남편을, 아이들 아빠를 보냈던 것이다.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슬픔밖에 없었다. 남편이 투병을 시작한 이후, 나는 언제나 슬펐다. 슬펐지만 웃었고, 슬펐지만 격려했고, 슬펐지만 안도했고, 슬펐지만 다독였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주인공이 되어야함을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지금도 저 노래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있고, 들을 때마다 그 날이 떠오른다.

I choose you. I will become yours, you will become mine.

당신을 보내야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된 것, 나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은 나의 것이었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