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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Mar 28. 2024

알코올중독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술에 빠진 당신을 술로 이해하는 밤

엄마가 다시 술을 마신다. 근무 중에 아직 어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감정에 가득 절여진 가지 사실이 내게 전달됐다. 엄마가 술을 마셨다는 것, 그로 인해 동생이 죽고 싶어졌다는 것. 내가 있는 동생에게 엄마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라고 얘기하는 것뿐이었다. 동생은 그러겠다고 했다. 얼마 있어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집 밖에 머무는 것도 힘들어 다시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견디게 졸려서 잠에 들려는 참이라고 했다. 엄마는 뭐 하고 있느냐 묻는 동시에 전화를 끊으라는 엄마의 신경질적인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런 와중에 동생은 잠이 온다고 했다. 나는 애의 미덥잖은 말을 기꺼이 믿어줬다. 온몸의 감각이 처절히 깨어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스르르 잠들어 버릴 것만 같은 상태가 뭔지 나는 안다. 


자정을 넘겨 그 하루를 떠나보내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다. 전해 들은 소란이 거짓말 같았다. 아침이 되자 동생이 살갑게 애교를 부렸다. 홀로 참담해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그 애가 울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 애는 꼭 어린 날의 나처럼 뒤틀린 형태로 성급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직장에 왔는데 또 여긴 여기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버거웠다. 퇴근 시간을 넘기자 간신히 붙들고 있던 줄 하나가 끊어진 듯 표정 관리가 전혀 되질 않았다. 친한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정 없이 그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남은 게 지금이다. 아주 혼자는 아니다. 삐딱하게 오른쪽 얼굴을 어깨에 기대고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시야 왼편에 소주병이 보인다. 


소주 반 병을 마신 나는 나른하고 관대해졌다. 어떤 생각까지 드냐면, 그래, 이런 기분을 누릴 수 있다면 술을 끊지 못하는 게 이해를 아주 못할 일도 아니구나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엄마는 악한 게 아니라 약한 게 아닐까. 엄마는 수도 없이 나를 배반한 게 아니라, 그저 수도 없이 술에 져버린 것이 아닐까. 어쩌면 엄마가 약한 것도 아니고, 그저 술이 너무 강한 것 아닐까. 그 술에 나도 무릎 꿇으면, 우리는 비로소 같은 편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술을 마신 날 동생에게서 전화를 받고, 곧장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이곳에서 중독자의 가족으로서 심리상담과 기타 지원을 받고 있다. 상황을 알리자 담당 상담사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10시에 매주 가는 상담이 잡혀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가고 싶지 않다.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기억해내고 싶지 않다.


엄마가 술에 중독된 것처럼 나도 일에 중독되어 있다. 이건 나도 인정하고 내 상담사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가족에 대한 집착이 일로 옮겨갔다고 했다. 안 그래도 집에 몇 시간 안 있는데 이런 날은 아예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직장에 남아 있는데 내 의지로 집에 안 가고 있으면서도 갈곳 없이 쫓겨난 사람 같다.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애가 지금쯤 곤히 잠들어있길 바라는 마음과, 명랑한 말투로 내 불안을 해소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뒤섞인 채로 답장을 기다린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디에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을 그나마도 최소한의 검열을 마친 후에 풀어놓을 뿐이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다른 중독자 가족들과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서럽고 불편한 설명들을 공유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단번에 깊이 이해했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문득 그들이 그립다. 모임에 나오는 그날마저도 술에 취한 남편에 맞서 아이를 보호하느라 조금 늦었다며 담담히 말하던 얼굴을 떠올린다. 마음이 편치 않을 와중에도 이해받고 소통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생명줄처럼 붙들었을 그 마음을 다시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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