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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 Apr 18. 2024

젖지 않으려는 결심

2024.04.08.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는, 보통 1, 2 지망으로 고르는 중학교가 아닌 생뚱맞은 중학교를 지망했다. 그래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던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 당시 살던 집에서 삼분 정도 걸어 나오면,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는 좁은 보도블록 인도가 나왔고, 그 길을 다시 삼 분 정도 걸어가면 이렇다 할 의자도 없이 녹슨 철제 표지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간이정류장이 나왔다. 나는 아침 여섯 시 사십칠 분부터 거기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과 맞닿은 그 도로는 윗동네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대로(大路)여서 중간중간 신호가 있긴 해도 차들이 달려 내려오는 속도가 독일의 아우토반 못지않았다. 지금이야 ‘안전속도 5030’이지만 그때는 지금 같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도로로부터 최대한 뒤로 멀리 떨어져서(그래봐야 뒤로 세 발 정도 물러났을 뿐이지만) 이쪽으로 달려오는 차들을 노려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내 신경은 온통 오 분 뒤에 오는 버스에 쏠려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데, 새 학기 봄이 지나고 버스 등교에 익숙해질 무렵 여름이 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은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도로는 마침 딱 정류장이 있는 위치에서 미묘하게 아래로 꺼져있었다. 그런데 그 균열이 이 차선을 가로지르며 있어서 폭이 꽤 넓었고, 또 도로 양 옆쪽으로 배수구가 없어서 비가 오면 설상가상으로 도로에 물이 무지막지하게 고이게 되는 도로였던 것이다.


  버스 등교를 하고 처음으로 비가 엄청나게 내렸던 날,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5분 동안 지나가는 차에 물 벼락을 네 번 맞았다. 물론 도로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차가 지나가면서 튀는 빗물을 우산으로 가려봤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건 뭐 운전자들이 샤워를 시켜주려나 보다 싶을 정도여서 이럴 줄 알았으면 목욕 용품을 챙겨 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저 장마가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를 빌어야 했다. 그 뒤로 중학교 삼 년간 큰 비가 오는 여름이면, 아침마다 피할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여름의 통과의례처럼 무조건 두 번 정도는 빗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오늘 봄비가 하루 종일 내려서 도서관 앞 일방통행용 작은 도로에 빗물이 엄청나게 고였다. 큰 비만 오면 아침부터 홀딱 젖었던 중학생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비 오는 날 이곳을 지나갈 때 유독 신경이 쓰인다. 물벼락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앞뒤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잘 살펴야 하는데 마침 내가 지나갈 때 내 뒤로 차가 왔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를 피하려고 후다닥 뛰었는데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어떤 아저씨가 나를 조용히 지켜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으악 거리면서 뛰는 걸 보고 차 빗물에 안 맞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뛰냐고 말하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모르는 아저씨가 날 보고 뒤집어지게 웃은 것 보다도 튀는 빗물에 젖지 않으려고 뛰는 내 모습이 너무 볼품없었겠다 생각하니 그건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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