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의 시작 2

소설 : 과로사한 김과장, 일잘러가 되다 2-2편

by 비지

오후에는 신입사원 모두가 인사팀 담당자를 따라서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했다.


"저는 김민준입니다. 열심히 배워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민준은 녹음한 듯 똑같은 인사를 반복했다. 민준의 인사는 평범한 인사였다. 다른 신입사원들도 비슷했다. 하지만 민준은 마지막에 한 가지 다른 걸 추가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겠습니다. 혼자 끙끙거리지 않겠습니다."


신입사원 단체 인사가 끝나고 민준이 자리에 돌아오자 창수가 다가왔다.


"민준 씨, 좀 특이하네요."

"뭐가요?"

"보통 신입들은 '잘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말만 하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겠다'라고 하니까 좀 신선해요."


민준은 조금 힘없이 웃었다. 혼자 끙끙거리다가 시간만 낭비했던 전생의 기억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그건 맞는 말이에요."


창수가 동의했다.


"그런 생각이면 빨리 늘 거예요."


업무를 마치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민준은 최부장에게 갔다.


"부장님 저 왔습니다."

"먼저 하나 물어볼게요. 보고서 쓸 때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준은 순간 당황했다.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최대한 빨리 돌려서 입을 열었다.


"음...... 정확한 정보?"

"틀렸어요."


최부장이 말했다.


"정확한 정보는 기본이지 제일 중요한 게 아니거든."

"그럼 뭔가요?"

"읽는 사람이 뭘 알고 싶어 하는지 아는 거예요."


최부장이 책상 옆에 작은 화이트보드를 끌고 와서 선을 그리며 설명했다.


"같은 정보라도 민준 씨 팀장님이 보실 건지, 이사님이 보실 건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야 해요."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새로운 관점이었다. 전생에서는 그냥 '정확하고 완벽하게'만 쓰려고 했었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아주 쉬워요. 물어보는 거예요. 즉 커뮤니케이션하는 거죠. '이번 보고서에서 특별히 확인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아, 그렇구나.'


민준은 가방에서 오늘 받은 회사 다이어리와 펜을 꺼내 메모했다. 보고서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알고 싶은 걸 쓰는 거다.


"그럼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물어볼게요. 보고서가 뭐라고 생각해?"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질문에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아 민준은 당황했다. 최부장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민준을 다그치지 않고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요."

"틀렸어."

"예?"

"보고서는 의사결정을 돕는 도구야. 정보 전달이 목적이면 그냥 데이터를 주면 돼. 왜 보고서를 쓰겠어?"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뭔가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구나."

"맞아.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

"음..."


민준은 또 생각했다.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잘 골라서?"

"그것도 맞고. 하나 더?"


민준이 아까 최부장이 처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써야 해요."

"좋아!"


최부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럼 하나씩 배워보자."


최부장은 화이트보드에 보드마카로 쓱쓱 쓰기 시작했다.


보고서 작성 3가지 원칙

결론부터 써라

이유를 명확히 해라

실행방안을 제시해라


"이게 기본이야. 결론, 이유, 방법 순으로."

"아..."


민준이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전생에서 자신이 쓰던 보고서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전생이 민준은 배경, 실행방안, 결론, 이유의 순서로 보고서를 썼다.


"왜 결론부터 써야 하나요?"

"바쁜 사람은 결론만 봐도 90%는 이해할 수 있거든. 나머지 10%가 궁금하면 그때 세부 내용을 보는 거야."


최부장이 실제 작성하던 보고서 하나를 꺼냈다.


"이거 봐. 첫 줄이 뭐야?"


민준이 읽었다.


"3월 신제품 출시를 2주 연기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럼 이 보고서 읽는 사람은 뭘 알 수 있어?"

"아, 뭔가 문제가 있어서 연기해야 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네요."

"맞아. 그럼 궁금해지는 게 뭐야?"

"왜 연기해야 하는지요."

"그게 바로 두 번째 부분, 이유야."


최부장이 두 번째 문단을 가리켰다.


"경쟁사 제품 출시로 인한 시장 상황 변화 때문이라고 명확히 쓰여 있지?"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 번째는?"

"어떻게 할 건지요. 실행 방안이 나와있습니다."


최부장이 웃었다.


"그렇지 2주 연기하는 동안 뭘 할 건지, 언제까지 뭘 준비할 건지 구체적으로 쓰여 있어."


민준은 살짝 허무했다. 이렇게 간단한 원칙인데 왜 전생에서는 몰랐을까?


"부장님, 이거 정말 유용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시작한 것도 아니야. 보고서만으로도 앞으로 배울 게 엄청 많을 거야."


최부장이 시계를 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연습 과제를 줄게."

"과제요?"

"우리 이번에 론칭한 신제품에 대해 워드 한 페이지로 보고서를 써와."

"한 페이지요?"


최부장이 웃었다.

"응. 짧게 쓰는 게 더 어려워. 하지만 그걸 연습하면 실력이 많이 늘 거야."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민준이 일어서면서 물었다.

"그런데 부장님, 저 같은 신입한테 그것도 같은 팀도 아닌 옆팀 신입한테 왜 이렇게 잘 알려주세요?"

"알려달라면서?"

"네?"


최부장이 잠깐 소리 내어 웃더니 말했다.


"농담이고 나도 신입 때 헤맸거든. 그때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 그 빚을 갚는 기분이야."


민준의 가슴이 뭉클했다.


"감사합니다. 꼭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열심히 말고 똑똑하게 해."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최부장의 마지막 말이 민준의 귓가에 울렸다. 전생에서는 이런 기본기를 배우지 못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민준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서 '성실하다'는 소리만 들었다. 처음에는 성실하다는 칭찬에 만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준은 이번 생에는 전생과 같은 경험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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