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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엔진 경고등이 말해준 진실 5년 무상보증기간

“자동차가 멈춘 순간,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by 달빛서재

어느 날, 제 차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자동차 엔진 경고등’이라는 낯선 이름으로요.


잊고 있던 ‘5년 무상보증 기간’이라는 소중한 약속으로 제 삶의 평화를 되찾은 이야기가, 비슷한 걱정을 가진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워킹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는 저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도시를 가로질러 출근하는 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장을 본 식료품과 고단한 몸을 싣고 따뜻한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안식처입니다. 20년 넘게 제 발이 되어준 수많은 차들은 묵묵한 위로이자 제 삶의 고단함을 증명하는 성실한 파트너였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막막함과 가슴을 꾹 누르던 불안감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해요.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고장 난 차 한 대를 고친 기록만은 아닐 거예요. 일과 육아, 그 숨 가쁜 경계에서 매일을 살아내던 제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편견과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제 삶의 안전과 존엄을 지켜낸, 작지만 아주 소중한 승리의 기록이니까요.


낯선 속삭임, 불안의 시작


늘 곁에서 묵묵히 제 발이 되어주던 고마운 녀석이, 어느 날부터인가 제게 아주 낯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퇴근길,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흐르고 곧 만날 아이 생각에 미소 짓던 순간이었죠.


계기판 한구석에서 스르륵 떠오른 낯선 주황색 불빛, 바로 '자동차 엔진 경고등'이었습니다. 처음엔 ‘피곤해서 잘못 봤나?’ 하고 넘겼지만, 그 작은 불빛은 제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어요. 마치 ‘나 좀 봐주세요, 나 아파요’ 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죠.


특히 아이를 태우고 복잡한 도심을 지날 때 그 주황색 불빛이 깜빡이면,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습니다. '만약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이 도로 위에서 차가 멈춰버리면 어떡하지?' 아찔한 상상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어요.


한때는 설렘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운전대가, 어느새 제게는 극심한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어버렸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우리만의 공간이, 가장 불안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슬픈 순간이었죠.


거대한 벽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나


"글쎄요, 원인을 찾을 수가 없네요." 몇 번을 찾아가도 서비스센터의 답변은 늘 한결같았어요. 소중한 월차까지 내가며 ‘시동을 끄지 말고 오세요’라는 말에 애써 달려가도, 그들은 언제나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죠. 차가 아프다고 속삭이는데, 그 말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 답답하고 외로웠습니다.


저는 그 기계적인 응대 속에서 아주 높고 단단한 벽을 느꼈습니다. '혹시… 내가 여자라서, 차에 대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걸까?'


스무 해 가까이 운전대를 잡아온 저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제가 그저 '불안에 떠는 여자 운전자'로만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태도가, 어쩌면 차의 결함보다 제 마음을 더 아프고 무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잊고 있던 약속, ‘5년 또는 10만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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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또는 10만 km'. 어느 순간부터 이 숫자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시간만 흐르는 상황 속에서 ‘혹시 이 기간만 넘기면 회사는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죠. 이 시간이 바로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과 동력계통을 지켜주는 **5년 무상보증 기간**, 즉 제조사의 소중한 약속이었으니까요.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이 벽 앞에서 작아지지 않겠다고요. 엄마로,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는 대신 내 목소리를 내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는 과정이니까요. 내 아이와 나의 안전이 달린 문제 앞에서, 소비자인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온전히 받겠다고, 정면으로 맞서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두드린 문, 그리고 작은 승리


제게 무기가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꼼꼼한 기록’과 ‘나라의 제도’였어요. 소비자라면 누구나 기댈 수 있는 언덕, 소비자원(국번없이 1372)의 문을 용기 내어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차분히 설명했어요. 언제, 어떤 경고등이 떴는지 찍어둔 사진, 서비스센터에 언제 방문했고 담당자는 누구였으며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 적어둔 메모까지 전부요.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렇게나 묵묵부답이던 서비스센터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고, 일사천리로 예약이 잡혔습니다. 그리고 내려진 진단은… 역시나 '엔진 결함'이었습니다.


몇 달간 제 애를 태우던 문제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 그간의 서러움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답니다. 마침내 제 오랜 친구는 건강하고 깨끗한 새 엔진을 선물 받았고, 저를 괴롭히던 주황빛 자동차 엔진 경고등은 더 이상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아이를 태우고 마음 편히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죠.


제가 얻은 작지만 소중한 지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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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랑을 담아 기록하세요.

내 차가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를 사진, 영상, 메모로 꼼꼼히 기록해주세요. 사랑하는 내 아이의 성장일기처럼요. 이게 가장 큰 힘이 된답니다.


둘, 약속을 이야기하세요.

내 차의 5년 무상보증 기간이라는 '약속'을 정확히 알고, "이 약속에 따라 점검과 수리를 받고 싶어요"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요구하세요.


셋, 함께해달라고 요청하세요.

혼자서 힘에 부칠 땐 주저하지 마세요. 우리 곁에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답니다.


그 일을 겪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가끔 생각해요. 그건 단순히 차를 고친 경험이 아니었다고요.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내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용기를 얻은 귀한 성장의 시간이었다고 말이죠.


혹시 지금,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혼자 힘들어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저의 작은 이야기가 따스한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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