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싹 날려줄 여름 소설 9권 추천

상황별 책 추천

by 군옥수수맛아몬드


1.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보며 - 도파민 팡팡 터지는

이디스 워튼 <여름>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20505


또래라고는 없는 시골 마을의 젊은 채리티.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서관의 사서이다.

어느날 그의 도서관에 손님이 찾아오는데... 아주 매력적인 도시청년 하니!


가장 재밌는 장면은..

이 둘이 반하는 장면 보여드릴게요..^^


"색인 카드가 있나요?"
상냥하기는 하지만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이상해서 채리티는 하던 일을 중단했다.
"뭐라고요?"
"글쎄 그거 있잖아요.“
그는 말을 멈췄다.
채리티는 젊은이가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도서관에 들어와 근시안으로 내부를 살펴보는 동안 채리티를 도서관에 딸린 가구로 여긴 모양이었다. 채리티는 그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할 말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깔고 미소를 지었다. 그도 미소를 지었다.


첫눈에 반했을 때의, 시공간은 모두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 세상에 둘만 있는 듯한 느낌,,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믿어보고 싶어지는 순간,,, 먼지 알죠 그걸 너무 잘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채리티 역시 하니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걸 단숨에 알아채고, 하니는 채리티가 그걸 알았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끄악...!!


그 수많은 사랑 책에도 불구하고 이게 왜 특히 재밌냐면, 이루어질 듯 안 이루어질 듯한 계층 차이 때문이에요.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채리티와, 대도시에서 멋드러진 삶을 살고 있는 하니... 이 둘은 어떻게 될까요. 채리티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채리티의 성장기도 주목할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사랑의 탈을 쓴 성장 소설이랄까.. 19세기 당시에는 여성의 욕망과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 많지 않았다고 하네용.

계층과, 여성의 욕망과, 성장과,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있는 엄청난 선물꾸러미~~!!



최애 문장은..

사랑이 핏속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데 어디에서 태어났건, 누구의 자식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문장에서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청춘물

잡숴보세요.




2. 고된 하루를 보낸 밤에 - 마음이 버석할 때, 한없이 촉촉해지고 따뜻해지는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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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공간과 상황에 환상적인 요소를 끼워넣는 임선우 작가의 단편소설집입니다. 특유의 따뜻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마구마구 묻어나는 글들이에요.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유령, 말도 없이 떠나버린 전 애인을 그리워하다 나무가 되어버린 남자, 모든 사람들이 해파리로 변하고 그런 해파리를 처리해야 하는 여자.. 등이 등장하는데요. 이런 귀엽고 환상적인 요소가 아주 잘 쓰인 따뜻한 책입니닷.

약해져 있는 사람들끼리 연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요.

임선우 작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더 살만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요즘 최애 작가입니다 하핫.


이것도 여기저기 추천했는데, 하나같이 듣는 평은 ‘정말 따뜻하다’!!

특히 전 표제작이 넘 좋아서 작문 모티브로 활용하기도 했어욥.


빛, 현실에서는 절대 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고 아름다운 빛이 거기에 있었어요. 김지선 씨가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인간이 해파리 빛을 보면 좀비처럼 달려드는 것으로 묘사하잖아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그날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저렇게 환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만 있다면, 삶에 미련이 없을 것 같았어요.
- 빛이 나지 않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지선 씨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고, 조심스럽다가 능청스럽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지선 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선 씨여서, 나는 지선 씨가 영원히 해파리가 아닌 지선 씨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 빛이 나지 않아요


어느 순간에는 푸르른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산을 보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은 이제 울지 않고도 푸르른 냄새가 나는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물을 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기분. 산과 나는 이제 슬픈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 여름은 물빛처럼


나는 금옥에게 시댁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당분간 못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금옥은 자신도 이번 달에는 꼴찌를 하는 바람에 바빠질 거라고 했다. 무슨 꼴찌? 그냥 꼴찌. 우리 둘 다 엉망이네. 그러네. 건배하자. 건배하기 전에 희애야, 시댁이랑 화해하지 않더라도 가끔은 들러 줘. 그래. 그럼 이제 진짜 건배하자. 응.
- 낯선 밤에 우리는


같이 웃다가 우리는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길었고, 우리는 자주 쉬어 갔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얘기가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온몸으로 자신이 얘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그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 낯선 밤에 우리는




3. 비 추적추적 오는 장마 기간에 - 과몰입하고 싶을 때, 가슴 저릿한 거 읽고 싶을 때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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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아포칼립스물입니다. 망한 세상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곳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갖은 사람들의 로드트립기!

사랑, 우정, 가족, 배신, 이기심, 믿음..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포스트아포칼립스계의 도라에몽주머니임


제가.... 인소가 한참 유행일 때 유명한 새드엔딩 마니아였답니다? 베개에 눈물자국 생기고.. 가슴 찌르르한 그런 류를 참 좋아했는데요

저처럼 이런 과몰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해가 지는 곳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닷

이 소설이 새드엔딩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정도로 완전히 빠져들어서 후루룩 읽을 거리를 찾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추천해준 사람 100이면 100 재밌다고 합니다 크크


망한 세상에서도 사랑을 외쳐보고 싶다면

인류애가 박살났지만 그래도 또 한 번 사람을 믿어보고 싶다면

혹은 그러고 싶지만 않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추천추천


아이유 love wins all 뮤비 감독은 분명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물론 그런 류의 사랑만 나오는 건 아님


명문장 넘 많은디 우짜지

그래도 몇 개만 꼽아보자면..


이번이 마지막 끼니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감자 한 알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지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그런 게 지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 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지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지나를 닮고 싶었다.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4. 한바탕 울고 싶을 때

한강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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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날 있자나요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올 때

이 책 읽으면 바로 오열 가능^_^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옴니버스 장편소설입니다.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꿈 많은 인물들의 민주화운동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어느 한 인물도 짠하지 않은, 안타깝지 않은, 감사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은... 책 읽으면서 잘 안 우는데 이 장에선 휴지 통째로 갖다 놓고 눈물콧물 닦으면서 읽었어요.

수많은 동호, 정대, 진수, 선주, 성희, 정미들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해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묘사가 그만했으면 좋겠을 만큼 자세합니다. 끝까지 찔러 넣는 한강 작가의 문체가 돋보이는 책..


한강 작가의 책은 몇 권 읽지 않긴 했는데, 그래도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완독하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읽다가 잠시 멈췄는데요..

한강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돌판에 갈은 듯이 날카롭고 서늘한 문체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소년이 온다>부터 읽는 것을 추천합니당. 이 책만큼은 정말 호로록 읽을 수 있어욥.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고운 사람이 없어져버렸어야. 그 고운 처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빨래 바구니를 보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동화하고 칫솔을 들고 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일이 무신 전생의 꿈 같아야…….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생시에 가까워질수록 꿈은 그렇게 덜 잔혹해진다. 잠은 더 얇아진다. 습자지처럼 얇아져 바스락거리다 마침내 깨어난다. 악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억들이 조용히 당신의 머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쪽이었다.
(…)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5.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에 -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때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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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데요....

그래도 정말 재밌게 읽은 명문장 파티 책이기 때문에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삶의 크고 작은 기로에 놓였을 때, 내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소설이에요


큰 줄거리는 결국 스물다섯 안진진의 남편 찾기입니다.

안진진에게는 두 남자가 있는데요, 둘이 너무 달라요. 나와 비슷해서 공감대가 많은 사람과 나와 달라서 나에게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안진진은 누굴 선택하게 될까요? 가족관계와 개인적인 상황 등 안진진의 삶을 따라가며 함께 고민해봅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는 삶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안진진은 곧 나고, 내가 곧 안진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었어용.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이 책을 읽고 남긴 메모를 좀 공유하자면..


삶은 모순이다. 가난하고 불행한 엄마는 이모의 여유를 부러워하고, 자유롭지 않은 이모는 최소한 자신의 선택으로 굳세게 살아가는 엄마의 자유분방함을 부러워한다. 각자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느라 한평생을 보낸다.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만 바로 그 지점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망설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된다. 지독히도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자식은 그대로 답습한다.







6. 무더운 여름 열대야에 - 뒷골을 서늘하게 만들어줄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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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아주 섬뜩한 방식으로 비웃는 장편소설입니다.

결혼해서 많은 아이를 낳아 화목한 대가족을 꾸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 딱히 목적은 없고 그냥 그게 목표입니다. 그런 부부에게 다섯 번째 아이, 벤이 찾아옵니다.

벤은 해리엇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요, 해리엇의 배를 너무 세게 차는 등 네 번의 진통과 출산고를 겪은 해리엇도 이번만큼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게 나온 벤은 생김새도, 목소리도 이상해요.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이상적으로 갖춰놓은 가정을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하는 벤. 아니 어쩌면 해리엇과 데이비드 스스로 무너뜨린 걸까요. 벤의 무서운 행동들과, 그에 못지 않게 섬뜩한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질 겁니다. 여름에 딱!


도리스 레싱은 학교 교양 수업에서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며 처음 접했는데요,

가부장제를 신랄하면서도 씁쓸하게 비판하는 장면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 전체의 아젠다로 확장시키는 능력이 탑오브탑인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구나.”
그 두 사람은 모두, 사실 둘 다 마음속으로는 자신들이 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 그 애는 태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애나 그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 방어 능력이 없는 자신들의 평범함을 침범한 것이라고 느꼈다. -을 창피하게 여겼다.




7. 싱그러운 여름의 기운을 받고 싶을 때 - 읽고 나면 왠지 힘이 나는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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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조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큰 줄거리는 할머니 심시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 심시선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는 아님. 즉 심시선 3대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시선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이야기입니당. 새롭게 관계맺는 것도 있고요 오해를 푸는 것도 있고요.

그 시대의 신여성 심시선의 후예들답게 하와이에서누군가는 서핑을, 누군가는 탐조를 할머니의 제사상에 올릴 준비를 합니다.


이 할머니 심시선이 아주 흥미로워요. 화가이자 작가인 만능 엔터테이너.. 그러나 전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생전에 예술가로서는 덜 주목 받았던 사람.

이렇게 보면 되게 재미 없어 보이는데.. 재밌어요. 인물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이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이 인물들이 엄마 혹은 할머니 혹은 장모님 혹은 시어머니인 시선과 어떻게 관계맺었었는지 보는 게 재밌어요.


평범한듯 비범한 여성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다시 쓴 소설입니다. 심시선의 삶이 곧 현대사의 한복판이거등요

그리고 작품 곳곳에 묻어 있는 정세랑 작가의 세상을 향한 깊은 통찰이 아주 좋았습니당.


다 읽고 나서 이 삶을 한 번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왔으니까요. 우린 모두 시선을 품고 있으니까요!

강하고 따뜻하며 시림마저도 사랑하는 시선의 삶에 푹 빠져들어봅시닷


어린 시절 그 그림에 반해 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가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 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 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어쩌면 그 모든 고민이 어릴 때 아팠던 사람 특유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팠던 아이들은 언제나 삶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마음속 미래에서 우윤은 죽어 있었다. 죽고 난 다음 돌아보는 형식으로 지금의 삶을 판단하는 꼬인 시점이라서 고민되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 무엇이 부질없는가? 삼 년 뒤에 죽는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느 것이 주입된 욕망이고 또 오로지 자신의 욕망인가? 어디서 더하기를 하고 어디서 빼기를 해야 할까?


“내가 그날 이후로 곱씹고 있는 건 내 불행, 내 상처가 아니야. 스스로가 가엽고 불쌍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보다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는.‘’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 거야.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8. 축축 처지는 뜨거움에 -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배명훈 <미래과거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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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18635



<미래과거시제>는 SF 마니아인 지인에게 추천 받았습니다. 배명훈 작가는 한국 SF 소설계의 원형이라고 하네요.

SF는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갔는데 요건 정말 재밌어요

시간을 접고, 시제를 바꾸고.. 영화에서 보던 SF 아이디어보다 훨씬 범위도 넓고 기발해요

상상력에는 정말 끝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책입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정말 오랜만에 오로지 제목에만 이끌려 읽게 된 책인데요

말 그대로 기후변화 시대 이러저러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SF인듯 아닌 듯한 SF 단편소설집입니다

이것도 생각이 정말 기발해요..

네옴시티가 생각나는, 사막화된 땅에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장벽을 지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밖을 맴도는 사람들,


기후위기가 과연 어디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랑을 할지 그려볼 수 있는 책!

한 편 한 편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랜만에 서점을 둘러보며 좋은 책을 찾았을 때의 쾌감을 느꼈습니다


윤은 그날 아침 마침내,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만 하던 삶에서 벗어났다. 그날 아침 처음으로 윤은, 문제를 푸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문제 그 자체가 되는 삶으로 들어섰다.
(…)
하련은 그날 마침내, 시도 때도 없이 문제를 의식하던 삶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문제시하지 않는 삶으로 들어섰다. 그날 아침 처음으로 하련은, 어릴 때부터 기대했던 삶을 거머쥐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높이 올라서서, 손을 내밀어 얻는다.
- 돌과 탑




이번 여름에는

이 아홉 권 추천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