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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율 Dec 21. 2023

옥수수깡 팝콘옆 칸쵸

오늘은 옥수수깡 팝콘이다. 신상이다. 옥수수깡 팝콘에 얽힌 사연은 특별하다. 수학을 전공한 나와는 모든 면에서 너무도 다르던, 하지만 거의 처음으로 마음 터놓고 지내던 한국화를 전공한 동네 언니가 소개해준 과자다. 남편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항이라는 유배지에서 4년째 유배생활 중이던 내게 처음으로 다가와준 고마운 사람이다. 같은 동, 같은 라인에다가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하다. 맛있는게 생기면 나눠먹고 서로의 집을 편하게 왕래하는 마음씨 착하고 예쁜 이웃.이 정도 스펙이면 엄마들 사이에서는 천생연분으로 친다.



그런 언니가 신상이라며 놀이터에서 주길래 얼떨결에 받아온 그 과자를 오늘 아침에 보니 괜히 반가웠다. 이미 식탁에는 건강을 위해 먹고 있는 루틴이었던 견과류샐러드가 차려져 있었지만. 만약 엄마가 이 모습을 봤다면 등짝스매싱까진 아니여도 잔소리 대폭탄이 나올것이다.



엄마와 31년을 함께 살았다. 엄마의 룰을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 거기다가 나의 기질까지 맞춰지니 엄마, 아빠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착한 딸이였다. 엄마는 밥을 먹은 뒤에 과자를 먹어야 하는 분이였고, 나도 그래야 하는줄 알았다. 그리고 그게 편했다.



육아를 하며 느낀건데 난 참 스스로에게 질문없는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같다. 어디서 뚜렷이 드러나냐면 요즘 유행하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준다 라고 하는 감정육아부분이다. 초1딸에게 "오늘 학교에서 네 기분은 어땠어?" 라든지 "지금 네 기분은 어때?" 라는 말을 처음 뱉을때, 어색해서 어쩔줄 몰랐다. 목소리 톤도 엉망 표정도 엉망 그냥 한마디로 논설문 읽는 로봇엄마였다. 생각해보면 난 그래본적이 없다. 나에 대해 사소한걸 물어보는 타인의 질문에도 대신 대답해주는 부모님이였으니깐.



어렸을때 말더듬이였다. 어릴 때 생각나는 장면이 동네 전봇대나 담벼락 같은 곳에 붙어있던 '말더듬이 치료' 광고지를 보며 고민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생생하다. 전화번호도 적혀있는데 여기로 한번 전화해볼까 하는 마음과 함께.



질문없이 나를 모른채 살아온 삶이란 결국 신랑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고, 아이를 키우며 우리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키웠을까 라는 원망만 남는 삶이다. 처음에는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다. 어느덧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그 시절을 살아온 엄마의 삶도 참 녹록치 않았다 싶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않는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나의 기질과 첫째라는 특성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를 모른채 타인에게 친절한 삶을 살다보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랑과 아이를 존중하지 않게 된다. 한번씩 아이에게 하는 말이 꼭 어린 나에게 해주는 위로같은 말 같다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래 맞아, 어쩌면 어린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였나봐. 그걸 아이를 통해 하게되니 육아가 왠지 근사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눈물나게 고맙다. 아이가 독립하게 되면 많이 축하해주고 자랑스러워해야지. 그건 31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던 내가 나에게 주는 셀프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옥수수깡 팝콘이다.



까짓것 로봇엄마면 어떻냐. 그래도 엄마이기에 여백을 담당하며 내가 좋아하는거와 가까이 하다보면 소설읽는 엄마가되는거겠지. 그래 그것도 근사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교한 딸에게 딸이 좋아하는 칸쵸를 먼저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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