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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dor Jan 06. 2024

내 스물다섯에게 쓰는 답장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스물둘에 썼던 편지에 서른둘의 내가 답장을 썼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95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25살이었다. 대학졸업 시기에 취업 준비는 하지 않고 무슨 배짱이었을까. 모대학에서 모집하는 6개월 단기의 ‘드라마 작가’ 과정을 응시하고 합격을 했다. 글쓰기라곤 동아리에서 써 본 시 몇 편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부모님께 난 합격증을 선뜻 내밀지 못했다. 대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매일 술을 마셨다. 새벽에 들어와 잠을 자다 술이 깨면 다시 술을 마시러 나갔다. 술이 나를 마셨다. 돈이 없는 날엔 백수 몇몇이 돈을 모아 오천 원짜리 어묵탕에 마셨고, 아직 학생이던 용돈이 풍족했던 친구의 학교로 찾아가 마셨으며, 가끔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배워 취업을 일찍 한 친구의 주머니를 털어 마셨다. 그리고, 등록일 전날에서야 술기운에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부모님 방앞에 놓아둔 채 잠이 들었다.


 같이 술을 마셔주던 포클레인을 몰던 친구는 얼마간의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고,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보세옷가게에서 친척오빠의 일을 돕던 친구는 남대문에서 옷을 때어 지방으로 보내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했지만, 선뜻 그  제안에 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부모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지금 다니는 회사의 입사요강을 내밀었다. 그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 때문에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지 어림 짐작하시던 부모님이었다. 주위에 아는 인맥을 통해 회사를 알아보셨으리라. 그렇게 높지 않은 난이도의 시험이 있었고 시험까지는 몇 개월이 남아 있었다.  


 나도 자신이 없었나 보다. 6개월간의 배움으로 끝나지 않을 그 후의 긴 인고의 시간들을 버틸 자신이. 그렇게 나는 취업 준비생이 되었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입사원서를 냈고 시험을 봤다. 다행히 그 해 여름 회사원이 되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자 내가 번 돈으로 술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드라마 대사처럼 술 마실 이유는 다양했다. ‘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적당해서' 술을 마셨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으로 술을 마셨고, 읽어버린 꿈에 대해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 서른둘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모아둔 돈 없이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해야 했다.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지만 그래도 술에 탕진한 인생의 통장은 시작부터 초라했기에 아등바등 살아야 했다. 2년 뒤 딸이 태어났고, 네 살 터울로 둘째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쉰두 살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글쓰기였을까. 그것도 이렇게 나이 먹어서. 늦은 나이와 늦은 때란 없다고 얘기하지만 내 맘속엔 늦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래서 급했나 보다. 인스트그램에 우연히 뜬 ‘기록의 숲’이라는 모임 안내 글을 읽고 바로 신청을 했다. 고수리작가의 ‘마음 쓰는 밤’을 읽고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글귀를 골라 매일 가벼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는 다시 시작됐다.


 글쓰기에서 떠난 스물다섯에서 이십칠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조금만 더 부모님을 설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 의례 겁먹고 돌아선 내 비겁함에 대한 욕도 하지 않으련다. 내 스물다섯이 만약 그때의 선택에 대해 물어온다면 나는 아직은 답장을 못하겠다.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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