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묘(卯猫)일기 00.

10년차 토끼집사와 작은 악마의 조우

by SILV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운명이다.

다만 매우 달갑지 않은 운명이었다.


10년차 토끼 집사.

내내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던 내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운명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바꿔버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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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정지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우주와의 첫 만남은 분명 그러했다.

지하주차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당연하게도 나는 그게 내 차에서 나는 소리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선 간혹 그런 울음소리가 나곤 했으니까.


게다가 내 차 역시 고양이들의 놀이터였다.

춥고 더운 기상을 피해 숨어든 고양이들에 의해 내 차 유리창엔 종종 검은 발자국이 남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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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들에게 "이거 봐라, 내 복순(내 차의 이름이다)이 고양이 에디션임 ㅋㅋ" 이라며 헛소리를 하곤 했었다.


이 장황한 소개 글의 목적은 결국 하나다.

재난이든, 재앙이든, 나는 이 조그마하고, 까맣고 심지어 더러운 아기 고양이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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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남은 고양이 발자국보다도 더, 당혹스러운 만남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까맣고 작은 307g의 아기 고양이를 내 차에서 발견했다.

놀랍게도 보닛 안에서!

비명처럼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의 출처는 내 차였다.


나는 당혹스러운 채 까만 쥐 같던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 애도 나를 당혹스러워하며 바라보았다.

작은 입을 크게 벌려 우는 건 덤이었다.


와, 이거 어떡하지?


사진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우주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갑자기 이름이 떠올랐다.

이미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 아니지. 나는 토끼 한 마리 키우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다.


당장 고양이가 새로 생기면?

고양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 없는 내가 이 삑삑거리며 우는 작은 생명체에게 크나큰 혼돈만을 가져다줄 것이다.


분명 머릿속은 그런 계산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손만큼은 착실히 움직여 그 까만 쥐 같은 고양이를 품에 숨겼다.


1월의 지하주차장은 너무 추우니까.

이 낡은 아파트의 주차장, 일주일 넘게 방치되었던 내 차의 보닛은 또 더더욱 추웠을 테니까.

나는 허겁지겁 집으로 올라가 별이가 쓰던 이동장을 꺼냈다.


머릿속은 병원, 그 두글자로 가득했다.


"3주 정도 되었네요."

초면의 수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집 근처엔 토끼를 볼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별이는 꽤 멀리까지 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이 작고 당혹스러운 생명체의 경우엔 달랐다.

고양이를 보는 병원이 꽤 많았던 것이다.


별이를 키우며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병원의 문이 열렸다.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동장 안에 덜렁 넣고 간 이 작은 쥐 같은 생명체는 수의사를 보면서도 지지 않고 삑삑 울었다.


"수유를 하셔야 합니다. 한... 네 시간마다 한 번씩 분유를 타서 먹이면 됩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온갖 키트 검사상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이 말랐네요. 보호자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아이는 아마 이미 떠났을 수도 있어요."


나는 정말로 이 애를 어떻게 키워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수의사의 다정함 섞인 안타까운 말에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아 네 그렇군요." 뿐이었다.


"혹시 수유하시는 동안 아기가 떠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보호자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수유가 처음인 나에게 삼백 몇 그람짜리에 육만 가까이 되는 분유와 젖병이 주어졌다.

아직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은 고양이도 함께 주어졌다.


악마와의 조우, 이제 우주라는 이름을 얻은 검은 아기 고양이와의 첫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