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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an 07. 2025

20년 전의 나를 처음으로 칭찬해 주었습니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분리수거 장으로 가다가

   오늘 교실 청소를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체육관은 정리했지만 정작 교실은 난장판이라 교실정리를 하러 출근했다. 열심히 정리를 하는데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졸업식 플래카드 품의가 잘못됐어요.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품의기안 하나 올리는데 2시간씩 걸렸다(띄어쓰기, 쉼표만 잘못해도 반려하는 관리자 때문에 기안하나 하는데 온 신경을 다 써야 했다), 이제 이런 기안문 올리는데 10분이면 충분하다.

   기안문 작성을 마치고 다시 교실 정리를 하는데 또 연락이 왔다.

"졸업 가운 반납 신청 하셨어요?."

"네"

어제 퇴근하고 옷도 안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서 수거 예약을 했었다. 바로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료가 비싸다. 이 지역 CJ 택배는 수거 안 한다고 했고, 우체국 택배는 입력을 마쳤는데 예약 완료가 안된다. 다른 택배사를 검색해서 신청했다.

"어느 업체에서 하셨어요?"

"어디더라... "

캡처를 해 놨는데, 업체명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카카오로 확인 메시지가 와 있다.

"로젠 택배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교실 청소를 마쳤다. 카트를 가져와서 분리수거할 물품들을 가득 쌓아서 1층 행정실로 갔다. 분리수거장 열쇠는 행정실에 있다. 들어가니 담당 주무관이 묻는다.

"혹시 수거 예약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택배 수거 업체 찾아서 신청했는데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여긴 업체에 연락해서 수거 신청을 해야 해요. 개인적으로 신청하신건 취소하셔야 할 거예요. 그리고 이 무게면 품의하신 가격으로는 부족해요. 다시 품의하세요"

"아 그래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제 30분 걸려서 택배 수거 신청을 완료해 놨는데... 캡처해 둔 사진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택배 예약을 취소했다. 업체에 연락해서 반품 수거 신청을 했다. 업체에서는 물품이 무거우면 기사님들이 수거를 안 하니까, 2박스로 나눠서 신청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들은 한 박스에 다 보냈으면서. 

   이미 한 박스에 모든 물건을 다 넣어서 테이프로 꽁꽁 싸두고 위에 주소까지 붙여서 내놨는데, 박스를 뜯고 같은 박스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택배비 품의를 다시 했다. 그리고 칼과 테이프와 종이박스, 큰 비닐봉지를 들고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포장해 둔 박스를 뜯고 새 박스에 학사모와 가운을 넣었지만 박스 작았다. 더 큰 박스를 찾으러 3층으로 갔다. 박스는 이미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지만 안에 있던 물건을 모두 꺼내 정리해 놓고 가지고 내려왔다. 박스 안에 비닐을 넣고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나누어 담는다. 테이프로 밀봉한 후 주소를 프린트해서 박스 위에 붙였다. 두 번째 박스 포장이 끝났다.

행정실로 가서 말했다.

"포장 다 끝나고 품의도 마쳤습니다. 이제 다 된 거 같네요"

"작년 담당자에게 반품하는 법 인수인계 못 받으셨어요?"

"아, 제가 물어봤는데 자기도 한 번밖에 안 해봐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번에 확실히 알았으니 다음에는 한 번에 끝낼 수 있겠죠."


   다시 카트를 끌고 분리수거장으로 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구나.'


   24살, 처음 발령받아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보다 3살 많은 사수가 일을 못한다며 나를 많이 혼냈다. 그녀의 다그침이 무섭고 미안해서 교실에서 복도에서 나는 몇 번 울었다. 그때 나와 동갑인 동기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늘 그 동기와 비교당했다. 나는 일을 잘해야 할 것 같아 시키지도 않은 일을 밤 10시까지 남아서 하곤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 근무지가 바뀌었다.


   지역이 바뀌고 학교도 바뀌니 일의 방법과 순서도 달랐다. 하지만 같은 것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3살 많은 사수였다. 부장이었던 그녀는 힘든 일을 할 때면 나를 찾았지만, 정작 일을 끝내면 다른 사람을 칭찬했다. 그리고 종종 나에게 '니가 한 일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너는 누가 뒤를 봐줘야 한다.'라고 했다. 내가 실수를 하면 '니가 그렇지'라고 했다. 나보다 고작 3살 많은 사수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구멍'이라고 불렀다.

   결국에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나는 일은 못하는 사람', '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그러다 문득 오늘, 다 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한번 더하고, 준비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 나를 마주했다. 24살의 나나 44살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카트 가득 쓰레기를 싣고 분리수거를 하러 가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일을 처음 배울 때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는가?

  주어진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하는가?

  일을 '100%' 하지 못하더라도 그게 비난받을 일인가?

  무엇보다 누구라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는가?

  내가 한 일은 복도에서 눈물을 쏟고,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잘못한 일이었을까?


   44살인 나는 아직도 일을 배운다. 처음 하는 일은 모두 낯설고,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이 한다. 그동안 나는 실수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해서 이룬 게 없는 것 같은 사회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부정하는 타인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여 겁 많은 어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시행착오를 통해 일을 더 확실히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20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조금만 더 하면 되겠네'

그리고 '수고했어'


분리수거장으로 쓰레기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가다가 20년 전의 나에게 이렇게 칭찬해 주었다.


실패도 실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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