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겨울쯤 부산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별 목적은 없었다. 바람맞이 내지는 맛난 식사정도. 나름 맛집에 찾아가 허기도 채우고 간만에 친구녀석을 불러내거친수다에 술도 한 잔 꺾었을 거다.
기분도 알싸한게 눈 맞은 강아지처럼발발거리고 돌아다녔다. 난 이상하게생각없이걷다 보면늘 사람 북적이는 곳에 발길이 가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지만 나름 괜찮다.
녀석이 토박이였던 터라 줄곧 녀석 뒤만쭐래쭐래 따라다녔었다. 한 시간쯤 돌아다녔을까. 기왕 왔으니 해운대나가자고했다.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막상가보니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맥주 두어캔을 집어 들고 사람들 사이를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찬기운이 느껴졌지만푸석하진 않았다. 마침 여리게 노을까지져 겨울바다를 느끼기엔 최상의 하모니였다.
맥주 한 캔에묵힌 기억들. 추억들. 엷은 미소. 그렇게 수다로 부산을 피우다가슬쩍 우산 하나가 눈에들어왔다. 크고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은 검은색의 허름한 구식 우산이었다. 그리고 그 우산 속엔 어림잡아여든은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낡은한복에 웅크리고 앉아 여리게 지는노을을 앞두고 겨울바다를오롯이 보고 있었다. 주름이깊게 파이긴 했지만 고운 얼굴에 가지런히 빗은 머리가 예뻐 보였다.
무슨 일일까 생각도 채 하기전에 부석 하게 수염도 깍지않은할아버지 한분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손에는 아직따뜻함이 배어 보이는 모래 한 줌을 쥐고 뭐가그리 좋은지 여기저기 빠진 이빨 사이로 어린아이마냥 얼굴 한가득홍소를 띄고 있었다. 할아버지는가져온 모래를 할머니가 벗어둔 고무신에 가득 채우더니 손으로 잔모래를 걷어내고 말끔히 토닥거렸다. 진하게노을이 깔려 사람들 그림자로 정신없이얼룩진 해변인데, 아이처럼넘실거리는 여든의 노부부만이눈에 찼다.찬 바람에 춥지않을까 우산으로 감싸고 혹시나시리지 않을까고무신 가득모래를 얹는. 그리고, 그 모습에 미소 짓던여든의 그 모습만이 들어왔다. 왠지 모를 뭉클함이사람을 대함에살갑지 않던내게작은일침을 주는 것처럼 한참 동안 그 모습을 그냥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