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
보통의 드라마라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거나, 못다 한 인연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좀 다릅니다. 암 재발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을 나와 재규어 매장으로 향합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남은 돈 다 쓰고 죽어야지!"라며 초록색 외제차를 덜컥 사버리죠.
이 책의 저자, 사노 요코의 이야기입니다.
<백만 번 산 고양이>로 잘 알려진 동화 작가 사노 요코는 암 투병 중 쓴 일기를 모아 이 책을 펴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게 투병기가 맞나 싶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도 가발 대신 멋진 모자를 고릅니다.
✔️지독한 식욕: 죽기 전까지 맛있는 걸 먹겠다며 한류 드라마에 빠져 배달 음식을 시켜 먹습니다.
✔️독설의 미학: 아픈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죽는 게 뭐 대수라고!"라며 시니컬하게 대꾸합니다.
그녀의 문장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까칠하고 투박하죠. 그런데 그 문장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그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나일 수 있구나'라는 해방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삶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사노 요코는 죽음을 그저 '일상의 연장선'으로 끌어내립니다.
"죽는 건 무섭지 않다. 다만 죽기 전까지가 귀찮을 뿐이다."
그녀에게 죽음은 거창한 철학적 과제가 아니라,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보고 싶은 드라마를 챙겨보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사건입니다. 억지로 삶에 매달리지도, 그렇다고 삶을 함부로 포기하지도 않는 그녀의 태도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임을 깨닫게 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랄까요. 지질하고,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모습까지도 온전히 끌어안으며 살다가 떠난 그녀를 보며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고 서늘하게 풀어낸 사노 요코의 통찰.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날, 혹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문득 두려워지는 밤에 이 책을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떨치고 싶은 분
✔️'나답게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고민하는 분
✔️위로보다는 정신이 번쩍 드는 '사이다' 같은 문장이 필요한 분
-오늘의 사유-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초록색 자동차를 샀던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는 고유함을 잃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을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 다 떼어내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는 일.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