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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Feb 21. 2024

삶 넘어 삶

언제쯤 인생을 사는 일이 익숙해 질까

막내 아이가 킨더에 들어간 지 어느덧 6개월에 접어들었다. 올해 9월이 되면 드디어 막내아이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이유식만 떼도 다 키웠다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살아보니 그렇지가 않았고, 기저귀 떼면 다 키웠다고 생각하고 보니 또 그렇지가 않았다. '이 정도면 다 키웠지'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몇 개월 단위로 종종 발생하는데 지나고 보면 또 그렇지가 않다. 언제쯤이면 이 아이를 다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올해 1학년에 입학하는 막내아이를 보며 다 키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 아마 그렇지가 않겠지. 이미 첫째, 둘째 아이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일들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할 테니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선생님 말씀을 이해는 하는지, 수업 중에 딴짓은 하지 않는지, 영어가 딸려서 대화가 어설프진 않은지, 아이가 이제 혼자 잠은 잘 수 있는지, 날씨 따라 옷은 갖춰 입을 줄 아는지 등등등.. 한 아이를 스스로 설 수 있는 오롯한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란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나도 내가 아직 컸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니, 언제쯤 되면, 아니 년이나 살고 나면 삶이 익숙해지고, 인생이 자유로워지고, 편안하게 느껴질지 없는 일이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하고 보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가 좀 더 빨리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배 속에 아기가 자라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뱃속에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 나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고 지킬 것이다'는 생각이 자라면서부터 이게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구나 싶었던 때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의 자격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내가 등 떠밀듯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건가 싶었다. 아이가 하나, 둘, 셋 태어나면서 바쁜 남편을 대신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감당해 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게 진짜 어른인가 싶었다. 그렇게.. 내가 어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육아만 10년을 했다.

아이들이 셋 다 학교에 들어가고, 예전부터 꿈꿔오기만 했던 자유의 날들이 다가왔다.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각, 무려 6시간 이상을 어디다 써야 할지, 그동안 쉬지 못하고 놀지 못한 만큼 좀 놀아도 되는 건지, 놀면 누가 흉볼까 봐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해 1년을 방황했고 이제야 내 삶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나이는 30대 중반인데 아무도 늦었다고 말하지 않는 캐나다에서.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하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이 그 무엇이 되었든,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캐나다에서.


정작 나는 10년을 잃어버린 기분으로 서 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에게 주었는지, 뭘 하며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보면, 내가 다 손수 하나하나 키웠는데, 단 한순간도 쉰 적이 없고, 단 한순간도 포기한 적 없이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고 버티다 지금이 되어버렸는데. 저렇게 한 명 한 명 예쁘게 자란 아이들이 내 옆에 버젓이 있는데도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는, 그 시점에 서 있다.


나를 꾸미는 일도 잊어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잊어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느덧 나는 나이 40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너 이제 애들 다 키웠잖아. 이제 이거 해봐야지. 이제 저것도 좀 해봐." 하며 나를 등 떠민다.

무려 10년간을 애들만 키웠는데, 사회 속에 섞여 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나에게 자꾸 이것저것 들이미는 상대가 야속하기만 하다.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다음 단계의 삶으로 옮겨진 기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나를 등 떠밀면 등 떠밀어진 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버겁고, 눈물 나고, 가끔은 토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싫어요.' '전 못해요.' '전 자신이 없어요.'라는 말을 하기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런 말을 내뱉는 대신, '열심히 해볼게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내가 밉지만, 늘 그랬듯 주어진 환경에 나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내가 뭐기에 '나'라는 사람에 맞춰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런 삶이란 없을 테니까. 토할 같아도, 감당이 안될 같아도, 일단 던져진 몸뚱이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 그게 인생을 사는 일인 것 같다.




가끔은 40대를 훌쩍 뛰어넘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50대엔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나도 인생의 절반을 살다 보면 삶이 익숙해져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살이 좀 쪘어도 '괜찮아. 내 나이가 50인걸' 할 수 있고,

피부가 좀 늘어졌어도 '괜찮아. 내 나이 50에 이 정도면 괜찮지' 할 수 있고,

하루하루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살아요. 그렇게 살아도 진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허덕이는 나이도 아닐 테고,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닐 테고, 

이제 인생을 절반 넘게 살았으니 무슨 일이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하지 못하고 죽으면 후회될 것 같은 일들을 하고 살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싶어서.


지금의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10년이나 했지만 그 삶 너머에 또 다른 삶을 만나는 중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듯,

또 새로운 어떤 인생의 여정속을 타인에 의해 발을 담근 기분이 든다.

설렘보다는 두렵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무섭다.


얼마큼 인생을 살아야 삶이 여유롭고, 기대되고, 무슨 일이 다가와도 겁나지 않는 인생이 될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자유롭고 싶은 날이다.

내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남들보다 조금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 겁이 난다.

남들보다 일찍 엄마가 된 삶이 나에겐 강점이고 자랑이지만, 남들보다 일찍 엄마의 삶을 뛰어넘은 내가 그다음 인생을 뛰어들기엔 벅찬 나이임엔 확실하다.


빨리 숙제를 하면 빨리 놀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빨리 살고 빨리 놀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인생이라는 건 빨리 살아서만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한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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