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주언니 Apr 17. 2024

1년에 딱 한번 한국 음식을 선물하는 날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캐나다 사람들

4월 초엔 남편의 생일이 있다. 남편의 직업이 간호사다 보니 매주 일하는 날들이 불규칙하다. 작년 남편 생일날도 그랬다. 작년 남편 생일날. 데이근무 16시간. 아침 6시 반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집에 들어오는 일정. 말 그대로 생일날 하루 종일 일터에 있는 날이었다. 우리 집 가장이, 우리 가족 5명 먹여 살리느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남편이 하필 생일날에도 근무여서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한다니.. 6시 반에 출근하면 아이들과 초는 언제 불고 밥은 대체 언제 같이 먹어야 한다는 말인지..


남편의 생일 한 달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그날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 끝에 내가 그에게 대단한 선물은 해줄 수 없겠지만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먹을 도시락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전부터도 종종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00가 나보고 여기 위니펙에 감자탕 맛있게 하는 레스토랑이 어디냐고 묻길래 우리 집이라고 말했어. 우리는 감자탕.. 밖에서 사 먹어 본 적 없잖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감자탕이라니.. 나는 약간의 실소와 함께 "누가 감자탕이 먹고 싶데? 외국인들이 감자탕이 뭔진 알아?" 하면 "필리핀 애들이 그렇게 감자탕을 좋아하나 봐. 그거 먹으러 항상 가던 한식당에 가긴 가는데 혹시 다른데 더 맛있는 곳이 없느냐고 나한테 물어본 거였어." 했다.

비빔밥도 아니고, 치킨도 아니고.. 감자탕이라니. 그 감자탕 이야기를 남편에게 대체 몇 번이나 들었던지.. 언제 한번 날이 풀리거든 우리 집에서 감자탕 해줄 테니까 친구들 초대하라고 말한걸 동료들한테 전했더니 날이 풀리지 않아도 언제든 가고 싶다고 했단다. 허허.. 이거 참 한식의 인기가 대단하군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덕분에 한식 도시락을 준비한다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메뉴를 정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수도 12명 정도가 먹을 것을 준비해야 했기에 메뉴 선정이 더더욱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작년 이맘때 '서진이네'프로그램 방송을 주의 깊게 보던 터라 '서진이네'따라서  불고기 김밥과 닭강정을 만들기로 했다. 불고기 김밥은 프로그램에 나온 대로 야채를 볶지 않은 채로 만들었고 닭강정은 맵지 않은 맛으로 달달한 소스를 만들어 사용했다. 모두 12인분. 전날 잠들기 전까지 재료손질을 해놓고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김밥 말고, 닭 튀기고, 도시락 통에 예쁘게 담아 스티커까지 야무지에 붙이고 나니 아침 6시 반이었다. 눈 뜨자마자 2시간 반을 무슨 생각으로 음식을 한건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도시락을 싸서 남편손에 들려 보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을 깨워 아침 먹이고 준비시켜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오니 오전 8시 반. 남편에게 몇 개의 카톡을 받았는데 완전 대 성공이라나. 애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꺼내자마자 도시락이 동났다며 12개가 부족했다고, 너무 생일 축하를 많이 받아서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아무튼 너무너무 고맙고, 만드느라 수고 많았고, 애들이 우리 집에 언제 초대할 거냐고 계속 물어본다는 둥 등등등.. 결론적으로는 맛있었다는 얘기니 다행이군 싶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남편의 생일이 지나갔다.


그날을 기점으로 남편 직장 동료들이 잊을만하면 자꾸 물어본단다.

"감자탕은 언제 해줄 거야?"

"너 생일이 언제라고 했지? 그때 또 한국음식 먹을 수 있어?"

"언제 우리 초대할 거야?"


'아니, 왜 이렇게들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아? 신기하네..'


초대를 하려면 어렵진 않겠지만 사실 나에겐 감자탕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들이 우리 집에 잔뜩 몰려오면 나는 밥 보다 영어가 더 문제인 것을 그대들은 알까 몰라.. 그런 개인적인 문제로 1년 내내 나는 남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어느덧 남편 생일이 다시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올 해도 생일날 근무가 잡혀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데이 16시간이 아니라 이번엔 나이트 16시간이었다. 오후 2시 반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8시에 집에 오는 일정. 작년에 보냈던 도시락이 인기가 너무 좋아서 올 해도 도시락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서도 해주면 애들이 좋아하긴 하겠다면서 앞 뒤가 하나도 안 맞는 말을 계속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내 알아서 하지."


또다시 생일 한 달 전부터 메뉴를 고민고민한 끝에, 올 해는 비빔밥과 양념치킨을 하기로 했다. 둘의 궁합이 잘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패할 확률이 가장 낮은 아이들로, 많은 인원의 것을 혼자 준비하기에 크게 무리가 없는 것들로,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먹을 음식이기에 냄새가 심하지 않은 것들로 추리고 추리다 결정한 메뉴였다. 이게 뭐라고 어찌나 골치가 아팠는지..


이번에도 하루 전날 비빔밥에 들어갈 야채들을 미리 준비해 두고, 소고기 고추장 만들어 미리 포장하고, 닭다리도 야무지게 염지를 해 둔 후 다음날 아침 여유롭게 일어나 닭다리 튀기고, 밥 하고, 계란프라이 만들어 예쁘게 포장했다. 올 해는 15개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분명 일찍부터 준비했는데 출근시간이 금방 다가와 마음은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찌어찌 도시락을 만들어 남편 손에 들려 출근을 시켰다. 남편이 출근하고 잠시 멍 때리고 있는데 아차, 참기름을 안 넣어 줬네. 하하하하.. 참기름 없는 비빔밥이라.. 거 참 미안하네 됐다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리려 했지만 한동안 빼먹은 참기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힘들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한 시간 후 나에게 보낸 카톡에는 비빔밥을 야무지게 비벼서 먹고 있는 동료 사진, 양념치킨 하나 손에 들고 한 손에 엄지 척하며 먹고 있는 사진과 함께 우리 병동이 아닌 다른 병동에서도 어떻게 소식을 듣고 와서 음식을 먹고 갔다는 둥, 양념치킨은 지금 당장 푸드트럭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둥.. 결론은 맛있게들 잘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15인분 도시락 싸느라 나 홀로 폭풍 같은 시간이었지만 애써서 만든 음식, 내 자식이 잘 먹어주면 너무나 뿌듯하듯이, 나 홀로 시간과 싸워가며 만든 한국음식에 엄지 척 해주는 외국인들이라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었다. 이런 마음이라면, 아마도 나는 당분간 매년 일 년에 한 번, 남편 생일이 있는 날에는 남편의 직장 동료들을 위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보내지 않을까 한다.




다음에, 언젠가, 내 마음의 준비가 허락되는 날, 꼭 한 번은 남편 직장 동료들을 초대해서 감자탕을 끓여주고 싶다. 나는 아직도 외국인들이 뼈다귀 고기를 들고 고기 뜯는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 사람들은 고기를 다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밥 볶아 먹는 것도 알까? 그것도 궁금하다. 우리 집에 초대하는 날이 온다면 모든 한국인들이 마지막에 꼭 후식으로 먹는 볶음밥의 별미도 보여줄 생각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또 얼마나 뿌듯할까.


외국에 살면서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간혹 있다. 한식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런 순간 중에 하나이다. 그런 사람들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직접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만들어서 한 번쯤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맨날 핫도그, 햄버거, 피자, 샐러드, 샌드위치, 가끔 야채수프 같은 것을 먹는 외국인들이 한식같이 다채롭고 건강한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은 더욱 특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 년에 한번, 남편 생일을 핑계로 그들에게 선물하는 한식 도시락은 내가 남편 동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작은 정성을 담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