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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r 28.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9

Mauritshuis 미술관 방문

<View of Delft, 1660-1661>

- Johannes Vermeer


네덜란드에 거주하면서 누리는 장점이 여럿 있다. 풍차도 멋지고 자연환경도 아름답고 봄에 곳곳에 피는 색색의 튤립도 예쁘다. 그런데 미술감상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눈 뜬 50대 아저씨에겐 더 큰 장점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 수시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암스테르담 중심부에 있는 국립미술관과 고흐 미술관,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크뢸러-뮐러 미술관,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등 전부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중년에 복이 터진 셈이다.


(좌) Mauritshuis Museum 전경, (우) 미술관 내부.


어제는 '마실삼아' 헤이그에 있는 Mauritshuis Museum에 다녀왔다. 원래 마우리츠라는 17세기 귀족의 저택이었는데 19세기 초반 정부가 매입해 미술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이곳은 플랑드르 지방의 16-17세기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당시 이 지역 1티어 화가인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의 작품들은 물론, 2-3티어 화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다.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좌) <델프트 풍경>, (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델프트 풍경>은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은 베르메르가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진귀하지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로 인해 더 유명하다. 이 분이 '델프트 풍경'을 감상하고 친구에게 쓴 편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옛날 사진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17세기 델프트라는 도시의 정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베르메르의 고향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먹구름 사이로 오른쪽에서 햇살이 다시 비치고 있고 저 멀리에는 날이 개고 있는지 구름 색깔이 다르다. 왼쪽 건물 지붕은 붉은 색, 오른쪽 지붕은 파란색, 그리고 햇살을 받은 건물은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강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도 매우 세밀하다. '가장 아름다운'까지는 몰라도, '매우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데에는 100% 동의한다.


(좌) <The Anatomy Lesson by Dr Nicolas Tulp>, (우) <Self-Portrait>

네덜란드 17세기 화가 원톱인 렘브란트의 작품도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 특히 그가 남긴 수십 점의 자화상 중 마지막 자화상에는 그의 인생 역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젊은 시절의 패기와 자신감은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그 많던 재산도 다 탕진하고 맞이한 쓸쓸한 노년의 심경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젊은 시절을 그린 '맨질맨질한' 자화상과는 달리 붓질이 매우 거칠다. 가까이서 보면 고흐 작품처럼 물감 덩어리가 느껴진다. 한 많은 그의 인생이 이 한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Laughing Boy>

Haarlem이 배출한 스타 Frans Hals의 작품도 있다. 한 소년이 밝게 웃고 있는 표정이 생동감 넘친다. 웃음기 가득한 눈매, 입술 사이로 보이는 토끼이빨, 빗질도 제대로 하지 않은 머리카락 등이 현실적이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처럼 거친 붓질로 소년이 환하게 웃는 '순간'을 포착했다. 처음엔 붓질이 느껴지지 않는 깔끔하고 완성된 듯한 극사실주의 작품을 더 좋아했지만, 요새는 이렇게 대충 덜 그린 듯한(?) 작품들도 못지 않게 좋아한다.


(좌) Adriaen van Ostade <The Fiddler>, (우) Jan Steen <The Sick Girl>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장르화(일명 풍속화)의 출현이다.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는 칼뱅주의 신교가 공식 종교였다. 그렇다 보니 내세를 중시하는 종교화로 교회를 사치스럽게 장식하는 구교의 전통은 배척되었고, 대신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린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The Fiddler>는 소박한 차림의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연주를 듣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공식적인 음악회는 아니더라도 17세기 네덜란드에선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연주를 듣고 즐기곤 했나 보다. <The Sick Girl>은 아픈 소녀를 검진하러 의사가 왕진온 장면이다(이 때는 동서양 막론하고 손목의 진맥을 짚어 병을 진단했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주요 주제였던 신화나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잔잔한 그림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소장 작품들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라도 네덜란드에 오실 기회가 있다면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꼭 방문해 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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