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KMSKA)에 다녀왔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다 보니 인접 국가 유명 미술관에 편히 다니는 호사를 누린다.
미술관에서 주옥같은 작품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감탄만 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다', '아는 게 많으면 좋을텐데..' 하는. 화가의 생애나 미술사조까지 다 알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이전에 작품 내용에 대해서라도 더 알면 대작들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중학생 때 이후 수십 년 만에 신약성경을 다시 펼쳤다. 신앙이 아니라 미술공부 차원에서. 성경을 알면 서양미술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고 하니까.
성경읽기 근육이 아예 사라져서 많이 읽지는 못했다. 겨우 마태복음 9장까지만 정독했다. 그런데 이렇게 잠깐 읽었는데도 알 수 있었다. 와, 성경이 옛 화가들의 아이디어 뱅크였던 거 맞구나! 마태복음 총 28장 중 겨우 1-9장을 읽었을 뿐인데 미술관과 책에서 만났던 관련 작품들이 여러 개 떠올랐다. 9장에 가서야 이제 막 세리(稅吏) 마태가 등장했구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지. 십자가 이야기도 아직 한참 남았는데.
(좌) Robert Campin <수태고지>, (우) Georges de LA TOUR <요셉 꿈에 나타난 천사>. 구글 다운로드.
(1장) 누가 누구를 낳고 어쩌고 저쩌고..가 처음에 나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등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들도 많지만 구체적 내용은 구약성경에 나오기 때문에 여기선 패스한다.
1장을 읽고 기억나는 작품은 두 가지다.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수태고지를 받는 마리아와(1:18), 천사가 요셉 꿈에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는 장면(1:20). 옛 대가들은 직접 성경을 읽고 영감을 얻었을까, 아니면 교회에서 설교말씀 들은 내용을 가지고 상상해서 그렸을까. 어느 쪽이든 성경 내용을 그대로 재현해낸 결과물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에 글을 모르던 일반인들은 그림만 봐도 신앙심이 불타올랐을 듯하다.
(좌) Rubens <동방박사의 경배>, (중) Joachim Beuckelaer <Earth>, (우)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영아학살>
(2장) 여기서는 세 작품이 떠올랐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드리는 장면(2:11), 헤롯왕을 피해 요셉이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는 장면(2:14),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인근 마을에서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다 죽이도록 명령한 장면(2:16)이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많은 화가들의 단골주제였다.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에는 Rubens 작품이 걸려 있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가답게 역동적인 붓질이 돋보인다. 인물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Joachim Beuckelaer의 흙(Earth)이라는 작품은 그의 4원소(Four Elements) 연작의 하나다. 그는 16세기 플랑드르에서 시장과 부엌을 묘사하는데 특화된 화가였다. 이 작품은 시장 상인들이 채소와 과일을 파는 장면이 주 내용이지만, 왼쪽 상단에 보면 두어 사람이 나귀를 타고 돌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장면이 바로 요셉이 헤롯왕을 피해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는 내용이다. 종교개혁이 막 시작된 시기였지만 아직은 기존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정물화 안에도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헤롯왕의 영아학살 관련해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의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영아학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기를 죽이려는 군인들의 광기, 아기를 안고 도망가는 엄마의 다급함, 한 군인을 눕혀놓고 눈을 뽑아버리려는 엄마들의 분노 등이 그림에 잘 묘사되어 있다.
(좌) 피터 브뢰헐 <Sermon of St. John the Baptist> 부다페스트 미술관 다운로드. (우) 베로키오&다빈치 <The Baptism of Christ>
(3장) 초장부터 세례 요한이 등장하신다. 이 분이 등장하는 작품도 꽤 여럿이다.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도 있고, 살로메가 요한을 참수한 사건은 많은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우선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 나타나서 설교를 시작했다고 나온다(3:1). 이에 대해서는 플랑드르 풍속화가 Pieter Bruegel the Elder가 그린 작품이 있다. 복장으로 보아 다양한 계층의 청중들이 운집해 있고 세례 요한은 가운데에 서서 설교를 하고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지만 맨 뒤에 있는 몇 명은 잡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설교 시간에 옆사람과 떠드는 사람들은 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장면도 나온다(3:15). 이 구절 관련해서는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와 다비치가 같이 그린 <The Baptism of Christ>이 유명하다. 6년 전 우피치 미술관에 갔을 때 다빈치 그림이라고 하길래 별 생각없이 사진만 찍어둔 그림이다(이걸 지금 써먹네!).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받는 예수님, 옆에 있는 두 천사 머리 위에 전부 노란색 할로가 있다. 예수님은 물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같지는 않지만 발목까지는 물에 담그고 계시다. 이 명작에 대해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 예수님 바지를 좀 크게 그려주시지, 배렛나루가 보이는 것 같아 민망하다.
Caravaggio <The Calling of St. Matthew>. 구글 다운로드.
(9장) 4-8장 내용에 대해선 딱히 생각나는 그림이 없었는데 9장에 가서 큰 놈이 왔다. 그 유명한 카라바조의 작품 <The Calling of St. Matthew>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책에서 많이 접했다.
예수님이 제2의 고향 가버나움에서 세리 마태에게 "와서 내 제자가 되어라"고 하셨을 때 마태가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장면이다(9:9). 맨 오른쪽에 있는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고 있다. 세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태는 마치 '저요?'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세리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광명으로 나서는 순간이다. 마태의 얼굴에 비친 빛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빛이다. 예수님 머리 위에서 사선으로 세리들에게 비친 빛은 작품의 의미를 떠나 너무도 아름답다. 역시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교차를 통해 극적인 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도사다.
신약 첫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을 겨우 1/3만 읽었는데도 관련 작품이 무수히 많다. 이런 식이면 성경 내용을 많이 알면 알수록 그림을 볼 때 이해도가 급상승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당장 마태복음부터 끝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