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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y 01.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70

독하다 독해.

<The Sacrifice of Isaac, 1603>

- Caravaggio


서양미술 공부차 성경을 틈틈이 읽고 있다. 며칠 전엔 신약 마태복음을 읽었고 오늘은 구약 창세기 일부를 읽었다. 읽을수록 분명히 느낀다. 성경은 명작의 보고(寶庫)다. 그간 봤던 작품들의 태반이 성경에 있는 내용이었다. 사전에 배경지식이 있었더라면 더 잘 이해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아주 '독한'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요즘의 상식과 도덕기준에서라면 매우 파렴치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던 사람이다. 아브라함 이야기다.


Gabriel Metsu <The Dismissal of Hagar>. 헤이그 Mauritshuis Museum.

정실부인 사라의 요구에 따라 아브라함이 첩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는 장면이다(창세기 21:14). 표정을 보면 여인은 떠나기 싫어하는 거 같은데 할아버지가 재촉하는 것 같다. '어여 가. 할멈 눈에 띄면 큰일 나..' 하면서. 부인을 의식해서 그랬는지 물과 음식도 별로 안준 거 같다. 하갈이 등에 메고 있는 짐보따리가 작아 보인다. 앞으로 닥칠 험난한 시간들을 예상하는지 하갈의 얼굴이 어둡다.


아브라함도 참..아무리 부인이 질투를 했어도 이건 심했다. 아이가 없어 맘고생 심할 때 아들을 낳아준 고마운 여인인데 이렇게 가정파탄 주범으로 몰아 쫓아버리네.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도록 금은보화라도 두둑이 줘서 보내든지 해야지 이건 너무하다. 부인도 남편도 독하다 독해.


Millet <Hagar and Ismael>. 헤이그 Mesdag Collection 다운로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를 헤매며 생고생을 했다. 가죽부대에 들어 있던 물이 다 떨어지자 하갈은 자식이 죽어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반대편으로 누워 목놓아 울고 있다(21:15-16). 밀레는 <만종>이나 <이삭줍는 여인들>처럼 차분하고 평화로운 농촌풍경만 그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아들이 아사하기 직전의 참혹한 모습과 이를 차마 보지 못하는 엄마의 단장(斷腸)의 슬픔을 우울한 톤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내용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봐도 엄마와 아이가 들판에서 참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당시는 무리지어 사는 사회였기 때문에 소속집단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다. 더구나 지역이 중동의 황량한 사막지대 아닌가. 아브라함도 자신이 쫓아낸 두 사람의 운명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본다. 알고도 그랬을테니, 독하다 독해.


Caravaggio <The Sacrifice of Isaac>. 빈 미술사 박물관.

아브라함의 '독함'은 하갈 모자를 쫓아낸 것으로 끝이 아니다. 끝판왕은 창세기 22장에 나온다. 바로 이삭 번제 사건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22:1-2).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단 장작 위에 꽁꽁 묶어 올려 놓고 칼을 들어 제물로 잡으려는 순간, 하늘의 천사가 이를 말리고 있다(22:9-12).


아브라함이 이삭의 목덜미를 잡고 제단 위에 짓누르고 있다. 이삭의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인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정신 차리세요!!' 하는 듯한 얼굴이다. 아들 목에 칼을 들이대려는 아버지의 단호한 표정이 아들에겐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반면 아브라함은 천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하겠다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하는 듯한 표정이다. 천사 말을 듣고 이삭 대신에 숫양을 번제물로 잡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신앙의 영역이라지만, 독하다 독해.


Rembrandt <The Sacrifice of Isaac>. 러시아 에르미따주 미술관 다운로드.

렘브란트도 '이삭의 번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바로크의 대가답게 구성이 연극의 한 장면 같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찌르려는 순간 천사가 그의 손을 잡아 칼이 떨어지고 있다. 이 장면에서 칼을 아직 들고 있는 카라바조 그림보다 더 극적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진짜 찌를 뻔. 독하다 독해.


여기는 이삭의 얼굴을 아예 왼손으로 가리고 있어서 그의 표정과 눈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근육이 잔뜩 경직돼 있는 것으로 보아 이삭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행히 아브라함의 표정이 카라바조 그림만큼 단호하고 결연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제 때에 말려줘서 고마워. 나도 심적으로 힘들었어'라고 하는 듯한 인간적인 표정이다. 


너무도 기본적인 궁금증이 든다. 하나님은 대체 왜 이렇게 시험을 하셨을까. 짓궂음을 넘어 위험천만해 보인다. 또 하란다고 하는 아브라함도 경솔하긴 마찬가지다. 이삭의 엄마 사라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남편을 칭찬했을까, 아니면 늘그막에 겨우 낳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졌을까. 먼 옛날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고 더구나 신앙의 영역이니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Anyway, 겨우 사나흘 성경을 읽었는데 성경구절에 딱 들어맞는 작품들이 여럿 떠오르는 신기함을 경험했다. 어, 이러다 완독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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