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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Dec 05. 2023

돌산 같은 사람이 되어라

중국 장가계 소도시 여행기

내 방 한쪽 벽에는 작은 메모지에 꾸역꾸역 글자가 구겨진 짧은 시 하나가 있다. 중국 교환학생 시절 처음으로 떠난 혼자만의 여행에서 적었던 시다. 그때 나는 뭐가 그렇게 이겨내기 힘들었던지,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어 멀리 떠났었다.

혼자서 높은 산을 겁도 없이 올라갔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두 다리 두 손을 다 써야 겨우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마지막 정상 부근의 계단은 정말로 네 발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다리가 너무 떨려서 철로 된 계단에 퉁퉁 울리는 소리에 골이 다 울렸다. 두려움이 다 지나가면, 나는 정상 위에 당당히 올라가 산 아래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잔잔히 내려오는 노을과 안개가 살짝 걸친 산새의 웅장한 모습은 한 동안 내 핸드폰 잠금 화면을 차지할 정도였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래로 향했다. 문제는 산속은 이미 해가 진지 오래라, 돌 사이사이의 이끼들은 눈치도 없이 이슬을 머금고 깨어나는 것이었다. 발은 자꾸 미끄러지는데 잡을 곳은 없고, 무서운 마음에 모르는 등산객에게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인기척 하나 없었다. 소리 내서 울며 산을 내려온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자연이 주는 무서움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순간을 기억하며 숙소에 돌아와 쓴 시다.

 

돌산 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 자태가 웅장하고 우직한 돌산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라.

 

겨울이 되어도 푸른 피부를 가진 돌산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라.

 

가파른 경사와 자글자글한 이끼들

건조한 바람과 한기에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돌산이 되어라.

 

안개가 너를 가리고 구름이 앞을 막아도

더 높은 햇빛이 너를 다시 비출 테니.

 

구름들이 다리를 놓고 노을빛이 지나갈 때도

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라.

 

해가 뜨고 지고 사계절이 흘러도

멀리서 너를 보러 달려갈 때

한결같음으로 누구든 안아주어라.

 

다른 사람의 선택에 항상 흔들리고 무너지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돌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말에도 내 색깔을 잃지 않고 나의 사람들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내가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벽 한편에 붙여놓았다. 밖에서 이리저리 치여서 아주 지쳤을 때, 분명 침대 위에서 엉엉 울어댈 테니까. 울음을 그칠 쯤에 나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 정도로 삼으려고. 사실 이때 이후로 혼자여행을 자주가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돌아와서 단단해진 내가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여행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수많은 시선에 지쳐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가려져 나 자신조차 나를 볼 수 없을 때, 잠시 떨어져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그날의 하늘 빛깔에, 구름 사이로 비추는 아주 얇은 햇살에, 잔잔히 흘러가는 물줄기에, 지나가는 새끼고양이의 작은 울음소리에, 부드럽게 잘 나가는 자전거에, 문득 흘러나오는 좋은 노래에, 친절한 아주머니의 미소에,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팔던 달콤한 과일에,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사소한 일에 방긋방긋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의 차가움에 주눅 들고 눈치 보며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나는 나와 여행하면서 내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모가 특출 나거나, 집안이 뛰어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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