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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Nov 21. 2023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준 이유

인도네시아 여행기

여행 내내 친구가 아팠다.

멈추지 않는 기침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아픈 그 친구 마음에 어떤 위로가 필요했을까 고민했다.

여행 준비 중에 위독하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버린 내 친구.

여행이 취소될 수도 있었는데 한국 멀리에서 친구가 왔다고 아픈 몸으로 가이드해 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괜찮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어도 된다고 계속 타일렀다.

이 여행은 너의 여행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여행이기도 하다며 계속 거부하기에 여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짐했던 것들이 있는데 지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후회만 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동시에 애인과 이별하고 배신감에 사무쳐 더욱더 자신을 잃은 듯했다.

 

중국 교환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애니.

그녀는 히잡으로도 숨길 수 없는 당당함이 눈에 띄던 친구였다.

난방셔츠에 진스를 즐겨 입던.

 

5년 만에 만난 애니는 표정을 많이 잃어버렸다.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애써 웃는듯한 표정과 힘없는 표정정도로 간소화되었다.

 

나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5년 주기라면 더욱더.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하며 문득 핸드폰에 "5년 전 오늘"이라는 테마로 클라우드 서비스 배너가 떴었다.

애니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그 옆에는 "HBD Annie"라고 적혀있었다.

아 5년 전 이 시기에 생일이었구나.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여행 2일 차에 애니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어떻게 자기 생일을 알았냐고 너무 당황하길래, 내가 더 당황해서는 다정한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까지 놀랐던 이유는 원래 본인은 생일을 챙기지 않아서였고, 슬픔이 묻어난 단호함이었다.

생일이 되면 모든 sns를 삭제하고 모든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너무 큰 기대감이 그녀를 여러 번 실망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운 동네로 3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가서 밤거리를 걸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라고 설레는 표정으로 설명해 주는 그녀가 참 예뻤다.

나도 정말 힘들 때 좋아하는 동네를 간 적이 있다.

강릉 구석에 작은 동네, 서핑샾하나에 포장마차가 전부였던 곳.

같은 마음을 가진 그녀를 위해 꽃을 하나 샀다.

 

"꽃은 왜 샀어?"

"그냥 주고 싶어서"

"나 오늘 생일인데"

 

그날이 그녀의 생일 당일인지 몰랐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꽃을 아무 이유 없이 주고 싶었다.

생일이어서가 아니라, 축하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축복받을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예전에 친구에게 꽃을 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그날 하루종일 왜 꽃을 사주었냐고 귀찮게도 물어봤었다.

그 친구는 아무 이유 없다고 그냥 꽃을 주고 싶었다고 그랬었다.

나는 그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좋은 마음을 그녀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흘러간다.

난 그렇게 흐르는 마음을 막을 생각이 없다.

냇가에 흐르는 계곡물처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흐르더라도 꼭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싸구려 코스프레를 하고 호객몰이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깊숙이 담아놓았던 이야기를 했던,

그날 밤 분위기와 날씨가 아주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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