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에 있는 그대로 솔직할 것
"취미가 뭐에요?"라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독서"라고 답한다. 그러면 "아니, 진짜 시간날 때 하고싶은 게 뭐냐구요"라고 되묻거나 "독서 말고 다른 건 또 뭐 좋아해요?"라고 되묻는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독서 말고는 글쓰는거, 그리고 외국어 공부하는게 취미에요."라고 답하고 싶지만, 나는 대신 "음, 영화보고 드라마 몰아보는 거 좋아해요."라고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대답을 한다. 그럼 그들은 그제서야 "아아, 나돈데!"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취미가 뭐에요?"
"독서에요"
"아니, 진짜 시간날 때 하고싶은 게 뭐냐구요"
"밀린 드라마 몰아보는 거 좋아해요"
"아아, 나돈데!"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니, 덧붙이기 귀찮을 때는 처음부터 취미를 "유튜브 보기"나 "넷플릭스 보기"라고 답해버릴 때도 있다.
취미가 독서라고 답하는 내가 '있어보이는 척'하는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취미가 독서라는 게 퍽 지루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독서에 대한 흥미가 없어 내게 다른 접점을 찾으려는 걸까. 심지어 수다떨고 놀기 좋아하는 내 모습을 봐 왔던 지인들은 하나같이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걸 믿지 않기도 한다. 아니, 시끄럽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도 취미가 독서일 수 있지 않나? 취미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내가 그들이 원하는 답변을 할 때까지 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휴.
가끔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어쩌면 그들은 사람 좋아하고 활발해보이는 내가 절대 책을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퍽 조용한 편이다. 아니,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내성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 혼자 여유가 있으면 카페에서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쓰는 걸 가장 좋아한다. 아, 내가 좋아하는 영어나 중국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물론 취미로. 이런 게 취미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보듯 한다. 책 읽고 글쓰고 공부하는 게 취미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따분해 보일까.
사실 나 역시 그랬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내가 갖고 있는 취미가 겨우 독서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말고, 나도 "가죽공예" 아니면 "수영하기" 같이 스킬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그럴싸한 걸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나. 잠깐 푹 빠지는 거 말고 꾸준히 몇년 내내 계속 좋아하는 게 취미라고 한다면, 나는 정말 독서와 글쓰기, 외국어 공부가 취미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모두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은 나의 끝도 없는 '지적 허영심' 채우기 위해서였다. 공부의 목적도 모르고 교과서만 외우고, 취업하기 위해 스펙만 쌓았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를 하는 거였다. 그래도 그게 제일 쉬웠다. 이미 직장인이 된 지금도 이 모든 습관들을 이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이 토끼눈을 뜨고 쳐다보긴 한다. 취업 준비생 때 하는 걸 지금까지 하는 내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계발은 그냥 내 취미가 되었다.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공부했던 영어 표현을 우연히 만났을 때의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고, 고통스럽지만 글 한 편을 다 써냈을 때 나를 꽉 안아주고 싶은 그 뿌듯함이 너무 좋았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덮을 때마다 안경을 새로 맞췄을 때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그 기분을 느꼈으니, 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모든 짜릿함과 뿌듯함과 새로움을 이미 느껴버렸으니 끊을 수 없다. 원래 모든 게 그렇지 않나, 억지로 하라면 못하지만 스스로 느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니까. 남편조차 이런 날 이해하지못한다. 넌 전생에 선비였냐며, 이렇게 공부할거면 차라리 학생 때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며, 나도 남편도 이런 내가 어이가 없어 함께 웃는다. 그러게,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그땐 억지로 해야해서 하기 싫었다.
전엔 취미가 독서라고 답하는 게 부끄러워 아무거나 답했지만, 이제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려 한다. 책 읽는 게 가장 좋다고, 그러니 같이 읽자고. 혹시 아는가? 내가 차마 몰랐던 그 사람도 나처럼 책 읽고 글쓰는 걸 좋아할지. 그럼 우린 또 하나의 접점을 찾는 걸테고, 좋은 걸 같이 읽고 나눌 수 있는 사람 하나를 더 얻는 것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