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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Feb 16. 2019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증인>이 남겨준 메시지

영화 <증인>을 보고왔다. 유력한 살인자의 변호인 순호 (정우성)과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가 있는 지우(김향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여느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 영화를 보러 들어갈 때의 설렘과는 별개로 보고나면 유달리 먹먹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가 있다. 내겐 이 영화 <증인>이 그랬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지우가 순호에게, 아니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영화를 보고나서도 끊임없이 내게 물었다. “너는, 지금 좋은 사람이냐고. 잘 살고 있느냐고.” 주인공 순호가 그렇듯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하기엔 부끄러운 순간들이 떠올랐다. 때때로 사람을 편견으로 판단했고, 상처를 줄 때도 있었으며, 남 탓을 하거나 불평할 때도 있고, 잘된 친구를 질투할 때도 있고, 사과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거나 절대 알지 못할 순간들을 적어도 나는 안다. 심지어 좋은 일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때조차 나는 안다. 그 행동을 하기 직전까지의 나의 순간적인 흔들림과 망설임까지.


사람들을 도우며 정의를 실현하며 법조인의 꿈을 키웠던 열여섯 살의 순호가 어른이 되고 진짜 변호사가 되고나서는 현실에 타협하고 만다. 그는 몰랐다, 아픈 아버지와 빚에 시달리는 그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자기도 모르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그의 눈을 가렸다는 걸. 감독의 말처럼 "선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에 치우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 시대가 이끄는 대로 살아온 한 남자”인 순호가 낯설지 않은 이유, 그에게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 때가 묻어야 한다”는 대표의 말은 씁쓸하지만 순호 뿐 아니라, 관객인 우리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었다. 일제시대 친일파 출신의 사람들이 독립을 하고나서도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부자로 대대손손 잘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는데도 사회에 의해 묵인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법조인들, 그리고 재벌들이 증명한다. 다들 알지만 쉬쉬하는 그런 진실들. 아니, 하다 못해 우리는 회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력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임에 분명한데도 대표나 임원에게 잘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분명 옳은 길이지만 짙은 안개에 가시밭이 있을지 늪이 있을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길. 사람들 몇 명만 밟고 지나가면, 차 타고 눈에 보이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길. 누구나 뻔히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알지만", 결정은 결코 쉽지 않을 길 두 갈래가 내 앞에 펼쳐질 때,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런 선택의 순간들은 나의 일상에서도 매일 있었다. 메일함에 쌓이는 수십 통의 메일 중 어떤 메일을 읽었을 때, ‘내가 답장하면 아무도 챙기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내가 이걸 챙겨야 하는 거겠지.’라며 선뜻 답장하지 않고 넘겼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별 뜻 없이 넘겼던 순간들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여 1년 후, 10년 후의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가. 

힘든 길인 걸 알면서도 기어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선 충분히 많은 일에 치이고 힘들어하시면서도, 응당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나서서 여러 부서와의 협의점을 이끌어 내고야 마는 우리 부장님이 그렇고, 영화에선 순호의 친구 수인 (송윤아)이 그런 사람이었다. 거대 로펌의 15명의 변호사에 맞서 1인 시위를 하면서까지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변호사의 길을 택한 수인은 삶으로서 그를 증명했다. 어쩌면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갈 뻔한 순호(정우성)가 다시 옳은 길을 걷고자 결심하게 된 데에는, 옳고 그른 게 무언지, 삶에서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알려준 지우와 수인과 그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나이 들수록 변하기 힘들고 큰 결심을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영화 한편, 책 한권이 삶을 바꿔놓기 쉬운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그러기가 힘들다.
나이 들어 사람이 바뀌려면 결정적으로 고정관념을 깨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같다.

- 영화 <증인> 이한 감독의 인터뷰 중-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순호의 아버지가 순호에게 건넨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네가 변호사가 되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다. 법조인이 된다는 것보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말에 우리 아들이 잘 컸다고 생각이 들어서… (중략) 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문득, 어릴 적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공란에 내가 <선생님>이나 <동화 작가>를 적어냈던 걸 떠올랐다. 나는 모르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또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돈 버는 직장인이 되었다. 

어리지만 이미 뭐가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는 지우를 보면서, 그리고 어릴 적 순호도 그랬을 거라는 걸 상상해보면서, 나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 어쩌면 어른보다 아이가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뭐가 좋은 건지 옳은 건지 바로 대답할 수 있는데, 어른들에겐 어쩐지 선택의 잣대가 유독 많으니까. “이래도 괜찮을까”, “나한테 도움이 될까”, “내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 하며, 어른들은 철저하게 자신에 대한 손익을 따지고 나서야 최대한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판단을 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미 어릴 적 배워 알았던 것들을 “기억"하면서도, 현실에 맞춰 고려해야하는 여러 기준들 때문에 오히려 판단을 잘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라며 가르치는 어른들. 나도 훗날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 앞으로도 꾸준히 나에게 묻고싶다. 어제의 울림을 잊지 않도록. 그리고 오늘의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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