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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Sep 14. 2024

(콩트) 구겐하임에 갖다 붙였습니다

연남동에 있는 수제 맥줏집 '브루클린'. 화가인 공병철과 다큐멘터리 PD인 김선주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실내는 붉은색 계통의 탁자와 의자로 꾸며져 있다. 호퍼의 '나이트호크"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천장 스피커에선 리사 오노의 "I Wish You Love”가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도시는 네온 불빛으로 물들어갔다.


김선주(맥주를 마시고 공병철을 보며): 그럼 언제부터 화가를 꿈꾸신 거예요?

공병철: 네... 6살 때부터 감정에 어떤 변화가 오면, 희한하게도 저는 붓을 잡았습니다. 붓이 없으면 정서가 심하게 불안해져서 머리털이라도 잡고 있어야 했어요.

김선주: 그랬군요. 털을... 아니, 붓을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네요.

공병철(웃으며): 그런 것 같습니다.

김선주: 뉴욕에서 그림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공병철: 그곳에선 정말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지요. (회상에 빠진 얼굴로) 어떨 땐 양손에 붓을 하나씩 들고 두 개의 다른 그림을 동시에 그린 적도 있습니다. 겨우겨우 그림을 완성시킨 다음 날 두 점 모두 도난당했지만... 아무래도 양손잽이 도둑놈한테 당한 것 같습니다.

김선주(웃으며):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공병철: 대도시에서 사는 다양한 인간상 그리는 걸 좋아해요. 사실주의적인.

김선주: 기혁 씨한테 들었는데, 뉴욕 현대 미술관, 구겐하임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도 그림이 전시되었다면서요? 그런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정말 대단한 예술가이신가 봐요. 아무나 그런 곳에 전시되는 건 아니잖아요.

공병철(흐뭇하게 웃으며): 바람대로 소문이 퍼졌군요. 당연히 아무나 전시할 수 없죠... (눈에 힘을 주며) 특히 구겐하임은 경비가 삼엄해서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김선주(의아한 듯): 네? 경비요? 그게 무슨…

공병철: 제 그림이 구겐하임, 뉴욕 현대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건 맞습니다. (사이를 두었다가) 하지만... 제가 제 그림을 청테이프로 직접 미술관 건물 벽에다 갖다 붙인 것입니다. 특히 구겐하임은 건물 오른쪽 벽이 매끈한 게 테이프가 아주 잘 붙더군요. 경비원들이 와서 3분 만에 모두 떼어버렸지만, 그래도 전시는 전시인 것입니다.

김선주: 그럼 정식으로 초대돼서 전시된 게 아니라… 미술관 외관 벽에다 그림을 붙인 거네요. 그것도 청테이프를 사용해서... 근데 왜 그런 일을….

공병철: 우리 사회에서 스펙을 얼마나 중요시합니까? 순수예술마저 그따위 것으로 평가하는 천박한 이 세상을 향해 미들 휭거를 날리는 심정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김선주: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웃으며) 우리 건배해요!


두 사람이 맥주잔을 들고 부딪쳤다. 잔을 단숨에 비운 공병철이 바텐더에게 훈제오징어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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