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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02. 2024

시인 추방론

12:20p.m 길게 늘어진 혓바닥이 이문설농탕 문을 열고 들어간다 

    허연 곰탕 국물이 천장에서 뚝뚝 뚝배기 속으로 떨어진다 그렇다 시인은 혓바닥으로 시를 쓴다 

1:15p.m 수면욕을 극복한 창조론자는 혓바닥들의 창고를 열고 들어간다 

                               박인환 시선에 콱 박히는 시선 그렇다 시인의 혓바닥에는 여섯 개의 눈이 달려있다


그래서 시인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양치질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키스는 체리 맛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달고나 뽑기를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당신의 몸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당신의 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노랫말이기도 한 '세월이 가면' 서늘하면서 날카로운 칼끝은 연인의 심장을 노린다  


오늘 모던한 혓바닥은 피상의 재킷을 입고 있다 그녀는 스모키 화장을 한 채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행세한다  


이데아를 본뜬 용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변기만도 못한 시들어버린 시들 그야말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오늘 어디에서 용기 있는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어디에 가면 이 세상 도덕적 대의를 향해 코웃음 치는 시인을 만날 수 있을까 대체 어느 고도에서 고도를 만난 청년을 볼 수 있을까 


2:30p.m. 2:35p.m. 2:45p.m. 2:55p.m. 3:05 p.m. 3:15p.m. 3:25p.m.

이 시간들은 순간에 속해 있다 이 시간들은 영원에 속해 있다 

         순간과 영원은 흐르지 않고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

그렇기에 고도는 이미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이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진리를 알고 있다 

시큼한 땀 냄새로 출렁이는 강물 모든 강의 소원은 죽기 전에 바다를 보는 것 

                                             3:34p.m  나는 무교동을 통과해 명동에 다다른다 진화론자의 증거들로 북적대는 거리 

이 냄새는 촨차이에서 날아온 것이다 성당 앞에서 닭꼬치를 든 여자는 광둥어로 말한다 


젠장 당신들의 혓바닥은 무엇이고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세월이 가면'은 명동의 한 막걸릿집에서 쓰인 노랫말 

            이 거리가 한때 시인들로 넘쳐났다는 건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이젠 누구도 이곳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작 시인을 추방한 동네는 

            마비돼 얼얼한 혀에 몸을 허락한다 세월은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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