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Jang Oct 06. 2024

요코하마 블루문

침대 위에 있던 장미꽃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꽃줄기를 90도로 꺾자 사토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토는 요코하마 토박이였는데 네덜란드어로 말하는 게 특징이었다.

일 처리를 무슨 그따위로 했어? 튤립 향이 아니라 아카시아 향으로 공간이 가득하잖아.
이런 식이면 이번 달에 월급 못 받는 수가 있어. 다시 가서 마무리하고 와.

나는 평일 5:30 pm 이후엔 5개 언어가 가능했고 화란어는 그중 하나였다. 툭하면 월급 제대로 안 준다는 협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G를 찾았다.

방금 사토한테서 연락 왔는데 아카시아 향이 너무 지독하대. 다시 가야겠어.

미나토 미라이의 한 타투숍에서 목에 욱일기 문양을 새기던 G는 버럭 화를 냈다.
빠가야로! 간토 출신 가짜 색목인이 또 생트집을!
나는 G를 설득해야만 했다.
다른 공간을 찾을 때까진 어쩔 수 없어. 삼십 분 있다가 곳에서 보자.

나는 야마하 오토바이를 타고 공간을 향해 질주했다.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위로 파란 달이 박혀 있었는데 그 모양이 꼭 하마를 닮아 있었다.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G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G의 목에 새겨진 문신은 자세히 보니 태극문양이었다. 색각 이상이 있는 G를 타투이스트가 속인 게 분명했다.
나는  사실을 G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조상이 백제에서 넘어온 사람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담판 져서 일을 줄여달라고 하자. 이렇게 넓은 공간의 향기를 둘이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 돼.

G의 입에서 나온 가느다란 실이 하마의 벌어진 입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G는 공간 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캄캄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어둠 속에서 밀회를 즐기던 까마귀들이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공간은 아카시아 향이 아니라 은은한 튤립 향으로 가득했다.

빠가야로! 그 인간은 코로 말하고 귀로 보고 입으로 냄새를 맡는구먼!
말도 안 되는 네덜란드어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 G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나 역시 어이가 없었지만 목에 태극문양 타투를 하고 길길이 날뛰는 G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흠모하는 히토미의 머릿결과 그녀의 튤립 빛 시선을 위해 사토의 네덜란드어를 알아들은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했다.

작가의 이전글 시인 추방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