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 있던 장미꽃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꽃줄기를 90도로 꺾자 사토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토는 요코하마 토박이였는데 네덜란드어로 말하는 게 특징이었다.
일 처리를 무슨 그따위로 했어? 튤립 향이 아니라 아카시아 향으로 공간이 가득하잖아.
이런 식이면 이번 달에 월급 못 받는 수가 있어. 다시 가서 마무리하고 와.
나는 평일 5:30 pm 이후엔 5개 언어가 가능했고 화란어는 그중 하나였다. 툭하면 월급 제대로 안 준다는 협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G를 찾았다.
방금 사토한테서 연락 왔는데 아카시아 향이 너무 지독하대. 다시 가야겠어.
미나토 미라이의 한 타투숍에서 목에 욱일기 문양을 새기던 G는 버럭 화를 냈다.
빠가야로! 간토 출신 가짜 색목인이 또 생트집을!
나는 G를 설득해야만 했다.
다른 공간을 찾을 때까진 어쩔 수 없어. 삼십 분 있다가 그곳에서 보자.
나는 야마하 오토바이를 타고 공간을 향해 질주했다.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위로 파란 달이 박혀 있었는데 그 모양이 꼭 하마를 닮아 있었다.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G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G의 목에 새겨진 문신은 자세히 보니 태극문양이었다. 색각 이상이 있는 G를 타투이스트가 속인 게 분명했다.
나는 이 사실을 G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조상이 백제에서 넘어온 사람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담판 져서 일을 줄여달라고 하자. 이렇게 넓은 공간의 향기를 둘이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 돼.
G의 입에서 나온 가느다란 실이 하마의 벌어진 입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G는 공간 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캄캄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어둠 속에서 밀회를 즐기던 까마귀들이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공간은 아카시아 향이 아니라 은은한 튤립 향으로 가득했다.
빠가야로! 그 인간은 코로 말하고 귀로 보고 입으로 냄새를 맡는구먼!
말도 안 되는 네덜란드어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 G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나 역시 어이가 없었지만 목에 태극문양 타투를 하고 길길이 날뛰는 G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흠모하는 히토미의 머릿결과 그녀의 튤립 빛 시선을 위해 사토의 네덜란드어를 알아들은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