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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10. 2024

(콩트) 패밀리 한의원

최종욱이 불광동에 있는 패밀리 한의원을 찾았다. 그는 며칠 째 편두통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패밀리 한의원 고충식 원장은 수염이 덥수룩한, 온화한 인상을 가진 초로의 남자였다. 그가 최종욱에게 말했다. “편두통 때문에 오셨군요. 최근에 무슨 신경 쓰이는 일 있나요?”

“아예... 신경 쓰이는 일이라기보다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인데 요즘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아서...” 

“작가예요? 어쩐지 풍기는 이미지가 그런 것 같았습니다.” 고충식이 말했다.

“예... 뭐 그냥...” 최종욱이 말했다.

“머리 하고 관자놀이에 침 몇 대 맞으면 금세 편두통도 사라지고, 글도 잘 써질 겁니다.”

고원장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최종욱이 말했다.

고원장이 침대를 가리키며 이쪽으로 누우세요,라고 말했다. 최종욱은 오이비누 향이 나는 침대에 누웠고, 고원장은 침놓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혹시 좋아하는 재즈곡 있으세요?” 고원장이 물었다.

“네? 재즈곡이요? 재즈곡은 왜 갑자기...”

“저희는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침을 놓을 때 항상 재즈곡을 틉니다. 도움이 되거든요.”

최종욱은 희한한 곳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노래를 신청했다. “저 그럼... 니나 시몬의 '마이 베이비 저스트 케어스 포 미'로...”

“니나 시몬이요? 아 예 있습니다.” 고원장이 오디오 플레이어를 켠 후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곧 스피커에서 Nina Simone의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흘러나왔다.

이때 문이 삐거덕 열리며 간호조무사가 들어왔다.

“저.. 원장님.. 아까 전화했던 남자가 또 전활 했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진료 중이니까 다음에 통화하자고 하세요. 이미 재즈곡이 흘러나오고 있잖아요.” 고원장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말했는데, 막무가내로...” 간호조무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우가 없는 사람이구먼... 암튼 그럼 좀 있다 내가 전화한다고 하세요.”

“네.” 그녀가 말한 후 되돌아갔다.

고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신경 쓰이는 일 있으신가 봐요?” 최종욱이 침대에 누운 채로 물었다.

“별것 아니에요. 어제 여기서 침 맞고 간 사람인데, 오늘 아침 한쪽 얼굴이 마비되고, 오른쪽 눈까지 안 보인다고... 하지만 한의원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면 복잡한 이 세상 어떻게 삽니까? 차라리 혀에 독침 놓고 피를 토하며 죽는 게 낫지.” 고원장이 말했다.

“네?” 최종욱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때 문이 다시 열리며 간호조무사가 들어섰다.

“또 뭡니까?” 고원장이 물었다.

“그 남자가 전화 안 받으면 찾아와서 책상과 의자, 진료기기 등을 가격 비싼 순서대로 부숴버리겠다고...”

“나 원 참. 안 되겠군. 실례합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고원장이 최종욱의 머리에 침을 놓다 말고 양해를 구한 뒤 진료실을 나갔다. 최종욱은 긴장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고원장과 남자의 통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당신 얼굴 한쪽이 마비되고, 시력을 잃어가는 게 왜 내 잘못이야! 그건 니 운명이 그런 거야, 니 운명이! 뭐? 돌팔이? 어디서 배워 처먹은 버르장머리야! 너 82년생이지, 나 82학번이야 인마!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 자식이 어디서 쌍욕이야! 내가 니 애비뻘이야! 그래, 올 테면 와봐! 자체 개발한 독침 쏠 거야! 니 마빡에!" 고원장이 버럭 소리친 후 전화기를 부서져라 내려놨다. 진료실로 돌아온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서. 그럼 침을 마저 놓겠습니다.”

얼굴이 노랗게 뜬 최종욱이 흐느끼듯이 말했다. “원장님... 저 이제부터...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좋은 글도 쓰고, 또 무엇보다 좋은 인간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제발...”


“네? 여보세요... 최.. 최종욱님... 괜.. 괜찮으세요...?” 고원장이 침대에 누워 잠꼬대를 하는 최종욱을 흔들었다.

“여.. 여기가... 어.. 어디죠?” 비몽사몽 한 얼굴로 최종욱이 물었다.

“어디긴 어디예요, 패밀리 한의원이죠... 피곤했나 봐요. 그새 잠든 걸 보면...” 고원장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 침 빼겠습니다. 오늘 하루 사우나는 하지 마시고요." 고원장이 최종욱의 머리와 관자놀이에 꽂힌 침을 하나 둘 빼기 시작했다.

오... 신이시여... 나의 인자하신 신이시여... 정신을 차린 최종욱은 신부터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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