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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28. 2024

간병일기 46

어머니와 화장실

어머니와 화장실


친정 엄마가 사위를 보러 오셨다. 월요일부터 죽 함께 지낸 어머님, 아버님은 본댁으로 돌아가셨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어머님 아버님이 가시고 나니 집안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해진 것 같다.


가족 중에 병자가 있으면 집안분위기가 좋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이해해주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서로가 힘이 돼 주지 못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어머니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당신 인생에 대한 죄의식과 하소연, 체념과 불평을 듣고 있기가 괴롭다. 때로는 먹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 남편은 저 모양인데 밥이 입에 들어가느냐고 묻는 것 같다. 설마 그러실 리가? 아니겠지만 어머니의 편치 못한 얼굴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정작 밥맛이 없어 밥술을 뜨지 않으면 안 먹는다고 야단을 치신다.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아무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어 울고 싶다. 

 

어머니는 당신 속의 불안을 곁에 사람에게 끊임없이 쏟아내신다. 그래야 조금은 숨통이 트이신 모양이다. 품고 있으면 화가 되고 병이 되니 속에 것을 쏟아내야 하지만 이 집안에서 어머니의 근심과 죄책감을 받아줄 여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나일 터인데 어머니 못지 않게 내 정신도 피폐하여 받아줄 여력이 없다. 가족들 모두 자신들이 감당할 몫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 몫을 챙기기가 벅찬 것이다.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어머니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으며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친정 엄마가 하룻밤 주무시고 나서 낮 12시쯤 셋째 언니네로 가셨다. 형님네 가족들이 1시쯤 왔다. 오후 들어 남편은 혀까지 꼬이면서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평소보다 남편의 상태가 더 나쁜 것을 알고 형님네 가족들이 일찍 자리를 떴다.


남편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사람이 나올 줄 모른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돼 노크를 하며 괜찮냐고 물어댄다. 남편은 오줌을 누고 싶단다. 소변 누는 것까지 이제 잊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잔뇨 때문인가. 알 수가 없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일밖에 없으니. 변기통을 들여다보니 누렇다. 방금 누지 않았냐고, 변기통을 들여다보라고 했더니 그것은 다른 사람 거란다.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남편은 화장실 밖으로 혼자 나올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할까. 아이들 어릴 적 대소변 가릴 때처럼 나는 끈기를 갖고 기다린다. 아직 멀었어요? 몇 번씩 확인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리는 문밖의 여자. 드디어 졸졸 오줌줄기 소리가 들렸다. 이 상태로라도 유지가 되면 좋을 터인데. 화장실 밖의 여자가 되어도 좋은데. 불안한 대로 초조한 대로 이런 상태나마 오래 지속됐으면 좋을 텐데.(2011년 1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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