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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Apr 01. 2024

간병일기 50

의무기록

의무기록


서울대 병원에 가서 남편의 의무기록 복사 해오다. 앞으로 남편의 질환으로 서울대 병원을 찾을 일이 없어졌다. 서울대 병원에서는 더 해 줄 게 없단다. 그러니 구태여 서울대 병원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을 데리고 거기까지 오고가는 것은 사람의 진을 뺄 뿐이다.


점점 나빠져 가는 남편과 집 가까운 병원을 다니며 보내는 일만 남았단 말인가. 잠을 설쳐서인지 하루가 몽롱하다. 늦은 오후 안방에서 두어 시간 누워서 자다가 깨다가 하며 어중간한 잠에 취했다. 서울을 갔다 와서 그런지 하루가 참 길다. 


의사가 준비하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차하면 이 사람을 영영 못 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으로 나는 한없이 우울해진다. MRI 상으로 작년 10월 말에 비해 암세포가 많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호스피스 병원을 고려해야할 단계까지 왔다. 의사가 말하는 ‘준비’는 아직도 생을 향해 그런 것을 생각할 때라는 말이겠지. 설마 갑자기 가버린다는 것은 아니겠지.


기억력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헛소리도 잦지만 식욕이 왕성한 것을 보면 그 시기는 아직 이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다정한 모습으로 저렇게 아직 웃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암세포가 뇌를 빠르게 점령한다 해도 아직 그 시기는 멀리 있을 것이다.(2011년 1월 2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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