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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Apr 02. 2024

간병일기 52

중환자실

중환자실


길병원 응급센터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 3층에서 잠을 자다. 


22일 토요일 새벽 12시 반쯤, 남편의 발작으로 응급실에 오다. 발작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쓰나미처럼 왔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는 의지와는 무관한 고통의 단말마. 혀가 말려들고 있어 수건을 입에 물어줘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따라 구급차가 다 출동한 상태라고 기다리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어머니와 나는 높은 곳에서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몸을 들썩이는 사람을 잡아 누이려고 했지만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무방비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들아’를 부르고, 나는 ‘여보’를 부르면서 그 고통스럽고 무서운 시간을 견뎌보고자 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렇게 사람을 부르며 안절부절 했다.


도중에 119에 두어 번 더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왜 그리 늦게 오는지 부른지 20분이 지나 도착했는데 그 시간이 무한대로 여겨졌다. 고통에 짓눌린 이그러진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발작 시간과 강도가 너무 길고 강해서 뇌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왔을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 질환의 하강곡선의 최저점일까.


응급처치를 하고 나니 발작이 진정되었다. 의사 말로는 계속되는 발작을 약물로 아예 없앴다고 했다. 당장은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손발 놀림을 조금 보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데 그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일의 진행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정신을 추스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발작이 올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전의 발작은 정말 새발의 피였다. 그토록 강하게 몰려올지 몰랐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나는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중환자실 면회 시간(오전 11시 30분에서 50분, 오후 7시 30분에서 50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면회시간이 되면 남편의 손을 잡거나 귓불을 만지며 이름을 불러 보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의사 말로는 회복은 불가능하고 이대로 며칠은 버틸 거라 한다.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보내고 나서 울어도 늦지 않은데, 왜 가슴이 먼저 반응을 하여 사람 몰골을 처참하게 만드는가. 


여보, 힘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혼자 가는 길에 당신 손이나 잡아주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럴 기회라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아이들 걱정하지 않게 잘 키울게. 내가 우는 것 안 좋아했지? 안 운다고는 말 못하고 덜 울려고 노력은 해 볼게.(2011년 1월 23일 일요일 아침 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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