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지 못한 아들,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
김유정의 「형」(가람기획)
인정받지 못한 아들,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
김유정의 「형」은 진한 슬픔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비극적 가족사다. 아버지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한 한 아들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남긴 재산을 모조리 탕진해 집안을 몰락으로 이끄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에는 김유정 특유의 웃음과 해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 가족의 파탄이 숨 돌릴 틈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인간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고 잘못된 길로 미끄러질 수 있는지를 냉혹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어린 화자가 형과 아버지 사이에 벌어졌던 어느 날의 사건—병든 아버지가 마당에서 처분을 기다리던 형을 향해 식칼을 던진 장면—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그러나 부자가 처음부터 이토록 상극이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바둑과 술, 오입으로 몸을 망쳤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병으로 드러눕자 형은 성실히 아버지를 돌보며 집안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열다섯 나이에 결혼한 형이 이혼과 재혼을 요구하면서 관계는 급격히 틀어진다. 인색한 아버지는 이를 완강히 반대했고, 설상가상으로 형을 제쳐두고 양자를 들여 병구완을 맡겼다. 아버지가 돌아가면 ‘한몫’을 주겠다고 양자에게 약속한 사실은 형의 마음에 깊은 배신감을 남겼다.
형은 그 시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집에 들이닥쳐 돈을 내놓으라며 누이들을 괴롭히고, 어린 ‘나’에게 왜떡을 사주겠다며 아버지의 통장과 도장을 훔쳐오게 하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식칼을 던졌지만, 그것은 형의 발끝 앞에서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생의 끝자락에서도 아버지는 형을 온전히 용서하지 못했고, 형 또한 아버지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그 갈망을 극복하지 못한 채 뒤틀린 심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와중에도 작은 온정의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특히 형이 병든 아버지를 위해 손수 조기를 사 와 정성스레 구워 상에 올리던 일, 그리고 그 조기를 어린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휘젓으며 먹어치울 때 아버지가 허허 웃어 보이던 일 같은 순간들이다. 그러나 이런 따스한 장면들조차 아버지의 인색한 성정과 까다로운 기질을 온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결국 부자의 감정은 서로에게 칼날처럼 박혀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아버지는 형에게 칼을 던진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형이 찾아오자 아버지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유언을 남겼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골을 메우기에는 지나치게 늦은 용서였다. 형은 효성스러운 아들임을 보여주려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내어 아버지께 드시게 하려 했으나, 피는 쉽게 나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저녁 상식이면 형은 계집에 둘러싸여 향락을 즐겼고, 아버지가 남긴 재산도 그의 방탕한 삶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안은 몰락했고, 형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김유정은 이 작품에서 가족의 붕괴를 해학이나 조롱 없이, 오직 날것 그대로의 비극으로 정면 돌파한다. 아버지에게 칼을 던지는 자식,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집안을 뒤집어놓은 아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원망의 장면들은 어린 화자의 마음에 깊은 균열을 남긴다. 그는 평생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그날의 냉혹한 풍경을 슬픔과 고통으로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비극은 한 개인의 타락을 넘어, 인정받지 못한 아들과 끝내 아들을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가 만들어낸 괴롭고도 슬픈 풍경이다. 다정해야 할 부모와 자식 사이가 어떻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며, 그 반목과 불신이 결국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기까지 하는지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작가의 불행했던 가족사가 겹쳐있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연민과 안타까움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