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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77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

by 인상파

김소월의 〈초혼〉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


사별의 고통을 이토록 절절하게, 육신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부르는 노래가 또 있을까. 김소월의 〈초혼〉은 15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뒤, 비로소 나의 시가 되었다. 아니, 그가 떠나기 전부터 이미 이 시에 감염된 것처럼 나는 시 속 화자가 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서도 언젠가 닿지 않을 이름을 먼저 불러보는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예감이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이 시를 읽다 보면 끝끝내 전하지 못한 심중의 말 한 마디가 몹시 궁금해진다. 단순한 인사는 아니었을 것이고 함께 가자던 약속이었을지도, 혼자 두고 가지 말라는 속삭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화자와 사랑하던 사람, 두 사람 모두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가 전해지지 못한 채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불러야 하는 이름이 남는다. 떠나는 자의 이름. 떠나버린 사람의 혼이라도 남은 사람은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을 부른다는 것은 이승의 목소리로 저승을 향해 손을 뻗어보는 일일 뿐, 그에게 닿을 리 없다.


죽은 자에게 이름은 이미 힘을 잃고, 이름이란 이승에서나 통하는 것이어서 부름은 울음처럼 흔들릴 뿐이다. 그래서 죽은 자의 이름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된다. 닿지 않는 그 이름을 오래 부르다 보면 화자의 마음은 어느덧 그 이름이 머무는 자리—저승—을 향해 기운다. 부름과 닿지 않는 아득함 사이에서 마음은 두 세계의 경계에 선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가 바로 그곳에 놓여 있다. 땅에는 그의 이름이 남고 하늘에는 그의 혼이 머문다. 부름은 아래에서 위로 오르지만 응답은 끝내 내려오지 않는다. 그 틈은 닿지 않기에 깊고, 닿지 않음 때문에 더욱 간절해진다.


이렇게 죽은 이를 부르는 화자는 떨어져나간 산 위에 홀로 서 있다.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려 기울어가는 시간을 비추고, 그가 흘린 울음은 저녁빛처럼 천천히 퍼져간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울며 그의 비통함을 거들어준다. 그 울음은 자연의 울음이지만 결국 화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이 부름은 죽은 이를 이승으로 데려오려는 초혼이 아니라, 부르는 마음이 저승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가는 부름이다. 닿지 않는 줄 알면서도 그 이름을 끝끝내 부르는 마음.


그 무력함과 지속의 힘이 〈초혼〉을 오래도록 살아 있게 하고, 이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을 오랜 시간 후벼파고 남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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