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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23. 2024

간병일기 40

마음의 준비

마음의 준비


서울대 병원 간 날. 항암약을 처방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의사는 다음 주 목요일 오전 7시에 MRI를 찍어보고 상태 봐서 약 처방 여부를 결정하겠단다. 남편의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이 그날이 될 건지. 의사는 남편의 질환이 천천히 하강곡선을 그으며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가다가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뚝뚝 떨어지는 특성을 가질 거라고 설명한다. 뚝 떨어지는 시점은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란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준비라? 내 머리로는 이 평범한 단어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남편 옆에서 나는 자꾸 울컥울컥한다. 눈물 때문에 사물의 윤곽이 흐리게 보인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병원에서 이렇게 사실 확인을 해주니 참담하다.  예견된 비극적인 결말, 모르는 바가 아니었음에도.

 

병원을 나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간 형님이 송내역에서 택시를 잡았다. 형님은 기사 옆 좌석에 앉고 나는 남편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집에 절반쯤 왔을까. 갑자기 의사의, 마음의 준비라는 말이 떠올라 울컥해지고 말았다. 어금니를 깨물어도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 택시 운전사가 거울로 흘끗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한 남자에 두 여자, 그 중의 한 여자가 울고 있는 상황이 묘했던 것일까. 


남편이 우는 나를 흘끔 보더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일까. 아내의 일에까지 무관심해졌다는 뜻일까. 자신의 불행에 이미 초연해진 몸. 남편이 아무 말도 묻지 않아서 신경쓰지 않고 울 수 있었다. 그저 고마웠다.(2011년 1월 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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