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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25. 2024

간병일기 42

한밤중

한밤중


새벽 3시쯤이었을까. 숨을 켁켁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 남편을 들여다보니 의식이 없어보였다. 말을 시켜보니 혀가 꼬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올 것이 왔구나.”였다.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겉옷을 찾아 입으면서 끊임없이 남편을 불러댔다.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근처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더 지켜보고 구급차를 부를 참이었다. 그런데 좀 지나자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또렷하다. 자다가 일어나 놀라 남편에게 발작이 왔다고 지레 짐작한 모양이었다. 상황을 넘겨짚고 머릿속에 떠도는 불길한 생각을 더해 시나리오를 썼던 모양이다.


어찌나 놀랐던지 손발이 떨리고 목소리가 흔들렸다. 언니가 잠시 숨을 돌리고 돌아가고 나는 겉옷 바지만 벗고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등골에서 한기가 올라오면서 온몸이 오돌오돌 떨려왔다. 편치 못한 수면 상태의 남편을 모로 누워 살피다가 잠이 들었다. 잠자리가 개운치 않았다.


남편이 9시도 안 돼 눈을 떴다. 잠자리에 누워서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가사 말을 흥얼거린다. 나도 곁에 누워서 분위기를 거들어준다. 박자도 음정도 안 맞는 음치 부부다. 아들 녀석은 아침부터 제 부모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남편은 곧 자기 배가 고픈데 아침 메뉴가 뭐냐고 묻는다. 요구르트와 가래떡이라고 해놓고 어제 먹다 남은 국수를 말아주었다.


11시 넘어 남편 친구 두분, 상수 형과 오형 형이 집에 왔다. 2시 못 돼 계용 형이 합류하여 근처 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친구 분들이 차 한 잔 마신다고 집에 다시 들렀다. 막 식당에서 돌아와 앉았는데 남편이 언제 점심 먹을 거냐고 물어왔다. 방금 먹고 들어오지 않았냐고 했더니 먹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남편 친구 분들이 식당에서 같이 밥 먹고 온 거라고 상황을 설명해도 남편은 믿지 않았다. 친구분들이 당황스러워하면서 남편이 많이 피곤한 모양이라고 금방 일어섰다. 오늘이 남편과 친구분들이 하는 마지막 식사가 아니길.(2011년 1월 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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