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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27. 2024

간병일기 44

고목

고목


누구나 가는 길. 막지 못한다. 백발을 막지 못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막지 못한다. 그것과 맞설 수 없다. 인정해야한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 날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듯 내 자신을 타이르고 있다.

 

남편이 그제 두 번, 어제 한 번 발작을 했다. 얼굴이 뒤틀리면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형벌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그것은 아픈 사람을 욕보이는 말이다. 아무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픈 사람만큼이나 할까. 정작 아픈 사람은 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아무 불평을 하지 못한다. 제 몸의 반역에 저항하며, 미로 같은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려고 지금 그는 얼마나 분투하고 있을 것인가.


어제는 저녁을 먹다가 발작이 와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떡국을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시원찮았다. 먹던 음식을 치우고 어머님이랑 나는 남편 등을 쓰다듬다가 손을 잡았다가 해가며 두려운 마음을 달랬다. 의식을 잃은 발작은 아니어서 안방에 데리고 들어가 눕혔다. 남편은 누워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발설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이미 죽음과 타협해버린 것은 아닐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목처럼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렇게 불순해져 버렸다. 신경쇠약증 환자가 돼 가고 있다.(2011년 1월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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