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차량 색상 중 무채색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내용이었다.
기억하기론 흰색, 검은색, 쥐색이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대학생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기회가 있어 미국에 가보니 그 기사가 떠올랐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내용이었지만,그 나라의 차량 색을 유심히 관찰했다.
물론 무채색 비율이 높았지만생각보다 각양각색이었다.
그때 아마 나름대로 결심(?) 했다.
나중에 차를 사게 된다면 꼭 무채색이 아닌 색을 고르겠노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취업을 했다.
출퇴근을 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타시던 10년이 넘는 NF 소나타를 물려받았다.
첫 차가 생겼다는 기쁜 마음에 애지중지 타고 다녔지만 오랜 연식에 따른 잔고장이 많았다. 고장이 많아 나름 원인을 찾고 고치면서 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고쳐가며 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고가 발생했다. 주행 중 차가 멈춘 것이다.
시속 80km로 달리던 중 엑셀을 밟아도 차가 나가지 않고 rpm은 줄어들었다. 게다가 편도 2차선 도로에 차는 줄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갓길도 제대로 없는 도로였다. 최대한 벽에 바짝 붙어서 차량을 정차한 뒤 보험사에 연락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차가 끊임없이 시속 80km로 달려오고 있어 문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렉카 차량에 끌려 정비소로 이동하고, 사실 그 이후로도 한 번 더 주행 중 시동이 꺼졌다. 그래서 더 이상 고쳐서 타기엔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다음 차를 위해 중고차와 신차를 동시에 알아보았다. 언제나 돈이 문제다.
그래서 중고차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 6개월을 공부했다. 침수차 거르는 방법, 자차 보험 이력 확인, 차량의 프레임이 교체되거나 수리된 적이 없는 것, 사고 차도 국산차는 50만 원, 수입차 200만 원 이하는 괜찮다는 등등.
유튜브를 보고, 각종 중고차 어플을 매일같이 들어가서 괜찮아 보이는 차량을 저장해둔다. 그리고 그 차가 정말 좋다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테니 금방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친 뒤 다음번에는 다른 사람이 낚아채기 전에 먼저 사야 했다.
그렇게 나한테 노란색 중고차가 왔다.
구매하고 싶은 중고차가 올라오고 약 이틀간 고민해 보고 예약했다.
노란색 쏘울 중고차 이외에도 사고 싶은 모델이 2가지 더 있었다.
그랜저 HG 16-17년식
도요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4세대
차량을 알아보았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돈이 문제였다. 또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해주는 말들이 있었다.
어차피 차는 한 번 사면 오래 타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원하는 걸 선택하라는 말도 있었고, 출퇴근용으로 사는 거면 가격대를 어느 정도 타협해서 사라는 말이었다.
그런 말들도 어느 정도 들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차는 초기 비용부터 유지비까지 많이 든다.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늘 깔려있던 터라 차는 이 비좁은 국내에서만 탈 수 있다는 건 내게 메리트가 없었다.
고로 원하는 차량보다는 저렴한 가격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색상을 고민했다.
무채색이 아니어야 되고, 가격대도 1천만 원 내외여야 했다.
그리고 내가 샀던 노란색 쏘울이 중고차 어플에 떴다.
소모품 중 가장 비싼 타이어
타이어 생산시기를 보니 1년 정도 된 거의 새것이었다. 더욱이 내가 원하던 옵션인 통풍시트(물론 운전석만 가능하다), 연식대비 짧은 키로수 (이 또한 시내 주행이 많았다는 의미일 수 있어 장단점이 있다)
파노라마 선루프
1인 신조
하부 언더코팅
비인기 차종 쏘울
비인기 컬러 노란색
(= 감가상각이 큼)
물론 되팔 것 생각하면 똑같다고 하지만 살 때는 팔 생각을 안 했다.
이 차를 타고 다니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노란색을 왜 샀냐?"
"굳이 튀는 색을 고른 이유가 뭐야?"
맨 처음 언급했던 무채색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 나만의 소심한 사회적 반항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남들이 물어볼 땐,
"그냥 예쁘잖아." 하고 넘긴다.
특별히 노란색을 좋아하거나 튀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반항심에 대학생 때 잠시 미국에서 느꼈던 것들을 생각하며 골랐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출근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기존 검정 NF 소나타를 탈 때보다 훨씬 차선 양보를 덜 받긴 한다. 조금만 늦거나 멈칫거리면 울리는 클락션 소리도 한몫한다. 그렇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튀는 컬러에 단종된 차량이니만큼, 도로에서 많이 보이지 않다 보니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내 차를 봤다고 연락받을 때가 있다. 마치 영업용 차량처럼 '나 여기 있다'라는 걸 자동으로 광고하고 다닌다.
너무 길게 끄적여봤지만
늘 소심한 반항을 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