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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라는별 Nov 30. 2023

나의 피눈물 방송작가 연대기 #1

내 손으로 내 목을 조르다

다시, 다시 한번.


그래도 똑같은 결과가 떴다.

말도 안돼.

내가 우울증이라니.


두 개의 다른 테스트가 모두 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그래, 내가 올해만 해도

세 번이나 내 목을 조른 건 맞다.


그래도 그렇지,

우울증은 나와 상관없는 얘기인 줄 알았다.


방송작가 생활이 남긴 상흔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그날은 교회 선교팀과 함께하는 수련회날이었다.


나는 그때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드디어 20회분의 출연자 섭외를 모두 끝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제작사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온전히 전담했던 터라

(보통 2-3곳에서 나눠서 한다.)

섭외지옥에 시달려야만 했다.


어떤 때는 ‘3명 섭외할 때까지 퇴근하지 말라’는

어이없는 말까지 들어가며 일했다.


그렇게 5개월간 이를 악물고 일한 끝에,

거의 처음으로 한시름 놓고 수련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밤 12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에는 다음날 촬영하기로 했던

출연자의 이름이 떠 있었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는 갑자기 일이 생겨

촬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교화 화장실에서 내 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사실 목을 조른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당시 하고있던 프로그램의 본사는

출연자 컨펌을 지독히도 안 해줬는데,

그 때문에 나는 눈이 빠지도록

출연할 만한 사람을 찾고 또 찾아야 했다.


그 프로그램은 말하자면 ’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

일반인이 출연하는

휴먼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렇기에 주로 ‘사업에 실패했다가 성공한 사람’

혹은 장애인이 주로 출연했다.


그런데 본사가 또 딴지를 걸어왔다.

장애인도 안 된다,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도 안 된다,

고 하면서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하루종일 다른 방송들을 보고 또 보며

겨우겨우 나름 괜찮은 사람들을 찾아놓았을 때,

‘좀 다른 결의 사람들을 찾아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날따라,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노트북 충전기로 내 목을 졸랐다.


‘겨우 그거 때문에 그랬다고?’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글로 옮겨 놓고 보니,

그때의 절망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그 심정이,

다 전해지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 역시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을 듣고,

‘그냥 일을 그만두지 왜 그랬대…’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겪어보니 깨달아졌다.

말도 안 되는 업무체계로 인한

숨 막히는 압박감과 괴로움,

또 ‘이 일을 그만두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두려움,

그리고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오늘 내게,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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