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혼자 닭갈비를 굽고 마지막에 깻잎을 뿌리며 양념파채에 싸 먹으면서 드는 생각이 저는 얼마 전만 해도 고기종류는 꼭 가족이 있어야 해 먹었었습니다.
근데 얼마 전에 오랜만에 미장원에 갔더니 머리카락이 얼마 전 보다 많이 가늘어졌다는 말에 혼자라도 고기를 먹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물론 수영장물 때문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대수롭게 넘기던 말도 이제는 나 자신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작은 거라도 실천하겠다며 조금씩 바뀌어 가네요.
사실 저는 예전에는 제 자신을 잘 돌보지 않았어요. 다독이는 말보다 자책할 때가 많았고 어찌 보면 무관심했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불편해하는지 제자신에 대한고민은 접어두고 오직 가족걱정, 자식에 대한 관심과 미래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고도 모르고 딸이 자신에게 관심 좀 줄여주었으면 좋겠다며 홀연히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섭섭한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밉지는 않았습니다 습관처럼 딸이 오면 같이 할 것과 딸이 좋아하는 것을 사놓고 기다렸습니다.
저의 제일 친구가 딸이었습니다.
힘든 걱정 고민을 말없이 듣고 다독여주던 딸.
그런데 그림을 전공한 딸은 제가 없는 타국에서 엄청난 큰 그림을 그려와서 처음 전시를 했는데 다 팔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드디어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죠.
그리고 K옥션에서 그림경매도 했는데 20명 이상이 비딩을 하여 서로 사겠다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엄마치마 붙잡고 저만 바라보는 아이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딸은 엄마보다 스스로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구나.
코로나 시기 영국에서 바로 오지 않고 오랫동안 그림 작업을 할 때는 경비도 많이 들고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며 얼마나 걱정하며 원망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구나 하며 참고 기다린 결과 어떤 큰일을 하려면 한번 이상은 큰 대가와 고통이 따른 다는 걸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딸을 믿어보자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내 생각들과 행동들을 바뀌어야 자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제자신한테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저도 홀로 서기에 돌입했습니다.
명동 롯데 백화점에 네스프레소 커피캡슐 산다는 핑계를 대며 혼자서는 한 번도 간 적 없는 명동교자도 혼자 갔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에 같이 가기로 한 모임분이 약속을 어겨서 취소할까 하다가 혼자 덕수궁 시립미술관 도 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혼자 가는 거라면 저도 안 갔을 텐데..
그 앞에 있는 유림면에 가서 가락국수를 혼자 가서 먹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본인들이 제가 필요해서 원할 때만 신경써주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 대신 나 자신을 더 아껴주고 무엇을 할 때 기쁘고 흥미로운지 살펴보고 힘들고 괴로울 때도 다독여주는 것을 이때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전 나에게 힘든 집안일을 끝내고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하며 위로해 주며 잠자리에 듭니다.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제가 그렇게 합니다.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기다리지도 말자고
그래도 티도 안 나고 끝도 없는 집안살림 맨날 노는 사람으로 만 보이겠지만..
그렇지만 우리 주부들은 각종 엄청난 일들을 해결하며 지낸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엄마가 많이 바뀌었네?” 하길래
”그래, 어떤 게? “ 했더니
“아니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대화를 해보면 예전엄마 같지 않고 잘 통한다고..
속으론 아휴.. 내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고 참으며 견뎌냈는데 하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바뀌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스스로 대견하게 느낍니다.
저도 예전의 고정관념, 낡은 생각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고 행동도 달라지는 것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낼 때 보다 고생했지만 노력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60살이 넘어도 계속 배우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