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게 다가오는 평범한 사람의 절규, 그에게 나에게 보내는 위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는 익히 영화 아마데우스로 유명하다. 그리고 극작가 피테 섀퍼의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화의 원작이다. 모처럼 보고 온 연극은 영화보다 살리에리 시점의 극 진행이 두드러졌다. 때문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느끼는 부러움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맞딱들이는 절망감이 더 두드러져서 다가왔다.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함께 주셨어야죠"
어릴 적부터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지는 못해도 종종 상을 타고는 했다. 공부나 연구에서도 일등을 휩쓸거나 엄청난 아이디어로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뒤 따라가고는 했다. 그래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처음 만난 살리에리가 눈에 들어왔고 왠지 모르게 그에게 동정과 공감이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전 연극에서 만난 살리에리 덕분에 나에게 살리에리의 절규가 내 마음의 소리가 되어 울리게 되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그리고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했으면서도, 스스로 분야를 선도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나 연구자가 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뛰어난 경제학 연구자가 되기엔 노력 외에 필요한 1%의 재능이 나에게는 없으니까. 열심히 내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살리에리처럼 난 내 역량을 잘 안다. 뛰어난 천재들의 연구를 알아볼 안목까지는 있지만, 정작 천재가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그 덕분에 한때 연구직을 떠나서 기획이나 다른 일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배운 도둑질은 연구에 글 쓰는 일이라고, 다시 연구직으로 돌아와 버렸다.
연극 속 살리에리는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천재적 재능을 바라보는 것에 괴로워하며 신에게 외친다.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함께 주셨어야죠!"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도 뛰어난 작품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자신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러한 기회를, 재능을 주지 않는 신에게 지쳐 결국 살리에리는 신에게 선전포고를 날린다. "이제부터 우린 영원한 적입니다" 1막 마지막 대사가 나를 소름 돋게, 그리고 뼈저리게 공감하게 했다.
"이제부터 우린 영원한 적입니다"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모두 살리에리처럼 신을 저주할 필요도, 고통에 몸부릴 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대한 노력하며 그 길을 걸어가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는 거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의미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오늘을 긍정하면서 버티는 거다. 하지만, 기왕이면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신에 대한 원망을 가지는 살리에리를 동정하게 한다.
그에게, 나에게 보내는 위로
빈 중앙묘지는 음악가들의 성지라 할만하다. 모차르트의 가묘,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슈트라우스 1,2세, 브람스, 체르니, 그리고 살리에리까지. 그중에서도 32A구역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슈트라우스 부자, 브람스가 한데 모여있다. 빈 시내에서 트램으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들은 한 군데에 삼총사처럼 모여있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다. 이들의 무덤이 찾기도 쉬워서인지, 애정 어린 꽃다발들도 가득했다.
그에 반해 51 구역에 있다는 살리에리의 무덤을 찾기는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첫 번째 중앙묘지 방문에서는 찾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으니까. 두 번째 중앙묘지 방문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살리에리 찾기에 나섰다. 1시간여의 사투 끝에 간신히 살리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쓸쓸하게 서 있는 그의 무덤에 꽃 한 송이를 두고 왔다. 역사적 사실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 죽음에도 관련이 없고, 처음에 라이벌 관계에서 점차 동료로 발전한 관계이다. 몇 년 전에는 그가 모차르트와 공동작곡한 악보도 새롭게 발견되었다.
모차르트를 독살하지는 않았지만, 말년 치매에 걸려서 스스로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외치곤 했다는 그의 모습을 고려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자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에게 느꼈던 열등감은 어느 정도 사실 아니었을까.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의 재능을 보며 좌절하고, 무언가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번민을 그도 한 가닥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그의 정신 나간 외침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었던 그의 평범함이 끓어올라 뺏어낸 단말마였던 것이다.
연극 속, 영화 속 자신의 평범함에 힘들어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한계를 절감하는 오늘날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빈 중앙묘지의 모차르트 가묘 대신, 살리에리에 무덤에 꽃 한 송이를 두고 왔다. 천재성을 갈구한 평범한 이였던 살리에리에게, 마음속 한 구석에 자신이 가지는 평범함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평범함을 받아들이고 오늘을 버티는 이들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함에 몸부림치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그에 무덤에 꽃 한 송이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살리에리가 자신을 기억해 줘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걸까. 아니, 아마도 괜찮다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가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의 수호자, 오늘도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는 평범한 우리 살리에리들에게 보내는 위로
*참고문헌*
1. 네이버케스트, 안토니오 살리에리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9373&cid=59001&categoryId=59006
2. 위키백과, 안토니오 살리에리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D%86%A0%EB%8B%88%EC%98%A4_%EC%82%B4%EB%A6%AC%EC%97%90%EB%A6%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