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성혁 Apr 13. 2022

아테네를 여유롭게 사용하기

아크로폴리스만이 아닌 살아가는 여행자를 위한 4가지 아테네 사용법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 아테네는 그다지 익숙한 도시는 아니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가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직항노선이 개설되어 있는 반면, 인천에서 아테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다른 도시를 경유해야만 한다. 일단 경유를 하면 짧아도 14~15시간이 걸리는 여정이 되다 보니, 여행자들이 많지도 않거니와 힘들게 온만큼 아테네의 명소만큼은 꼭 다 보리라는 일념 하에 빡빡한 여행 계획을 짜고는 한다. 그것도 아니다면 매력적인 에매랄드 빛 바다를 꿈꾸며 미코노스, 산토리니, 크레타 등의 해변을 떠나기 위한 중간 정거장 정도로 아테네를 사용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옛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고라의 민주주의를 외치던 매력적인 깊은 주름살의 소유자 아테네 아니던가. 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과거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찬찬히 길거리를 걸어보며, 중간 정거장보다는 조금 재미있게, 그리고 살짝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아테네를 사용해보자.


지하철을 타건,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X95버스를 타건, 그들이 데려다주는 중심시는 신타크마 광장이다. 아테네 판 여의도+광화문 광장 같은 이곳은 그리스 국회의사당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아테네 어디든지 트램이나 지하철, 그리고 웬만하면 아테네 거리를 느끼며 걸어서 주요 관광지로 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신타그마 광장이다. 특히, 한 발 한 발 아테네를 느끼며 걷고 싶은 여행자들이라면 이 근처에 숙소를 잡아 보시길.


맛있는 젤라토와 발길 닿는 카페로 발을 옮기자.



신타그마 광장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레 그레케(Le Greche)라는 젤라토 가게를 만나게 된다. 흔히 16세기 유럽의 궁정에서 귀족들이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젤라토는 오늘날 우유, 달걀, 설탕과 천연재료를 넣어 만드는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 그리스어로 그리스 여자라는 뜻의 상호를 달아둔 이 매장은 이탈리아 젤라토와는 살짝 다른 느낌의 그리스식 맛으로 변형(?)해 2014년부터 아테네 중심부에서 아테네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물론, 그리스 각지에서 직접 공수해온 재료들로 그리스만의 젤라토 맛을 낸다고 하는데, 일단 하루 종일 걷느라 지친 여행자에게 당충전만한 행복은 없으리라.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가 피곤에 지쳐 숙소에 들어오기 전 레그레케의 젤라토는 달달한 선물을 전해준다.



아크로폴리스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라는 아테네의 필수 코스를 마치고, 큰길을 따라 아테네를 한 바퀴 더 둘러보자는 포부가 무색하게 Coffee jont의 왠지 모를 매력에 가게 문을 넘어섰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근처라고 했지만, 조금은(?) 떨어진 주위에는 북적한 관광객들보다 아테네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카페에서 젤라토 하나와 커피를 주문했다. 관광객들이 별로 들르지 않는 곳임이 분명함에도 사장 부부는 어디에서 왔는지, 한국어로 아침인사는 무엇인지 낯선 여행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고 난 후 알게 된 이야기지만, 어떤 한국인 관광객은 이 사장 부부에게 그리스식 참깨 빵을 서비스로 받았단다.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카페에 들른 동양인 관광객에 대한 호의는 익숙한 관광지가 아닌 낯선 아테네 시민들 일상의 공간을 익숙한 동네 카페로 만들어 준다.


한국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하게 보이는 커피 체인 간판들이 몇 개 있다. 스타벅스, 이디야, 탐 앤 탐스, 할리스 등. 비슷한 느낌으로 아테네를 걷다 보면 개나리 노란색 마냥 샛노란 로고를 매단 카페 체인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Coffee Island는 1999년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파트라에서 시작된 커피 체인인데 현재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커피 체인으로 성장했다. 이곳에서는 커피 가루를 가라앉히는 형태의 그리스식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프라페까지 만나볼 수 있다. 매장에서는 커피 메이커는 물론 원두까지도 구매 가능하니 그리스식 커피의 향을 선물로 준비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하다. 오후에 아테네를 헤매다가 우연스레 만나는 Coffee Island에서 여유를 즐겨보자. 비슷한 시간 대마다 일주일을 드나드니 매장 직원이 이제는 아는 얼굴에 인사를 전하곤 한다. 잠시 한가로운 타이밍에 이런저런 나눈 수다에 따르면 2017년에는 영국 런던에도 진출했고, 그리스에서는 25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단다. 덕분에 그리스에서 커피 하면 이곳이 먼저 떠오르고는 한다.


맛있는 그리스 음식을 여유 있게 즐길 것!



그리스의 음식은 '지중해식 식문화' 중 하나로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일단 한국에는 그리스식 식단이라고 하면 요거트와 올리브, 수블라키 등이 떠오르면서 은근히 이미지 상으로는 친근한 음식이다. 하지만 2022년 4월 기준으로 보면 네이버에 그리스 식당을 검색하면 전국에 20여 개가 채 안 되는 의외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음식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랐다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까지 다 돌고 내려오면 대로변에서 서로 가게로 들어오라는 환대(?) 아닌 환대를 하는 식당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어필을 뚫은 나의 선택은 '리온디'였다. 그리스 여행 가이드 북에서 본 기억에 익숙한 간판 사진을 따라온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 친절한 안내와 만족할만한 음식의 퀄리티, 그리고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양이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한가득 산을 이루었던 까르보나라 외에도 그리스 음식으로 유명한 무사카(Μουσακά)와 칼라마라키아 (Καλαμαράκια)도 만족스러웠다. 재료를 일일이 볶은 뒤 가지와 감자, 다진 돼지고기를 층을 이루게 하고, 오븐에 구워서 나오는 무사카를 한 수저 푹 떠너 먹는 맛이란! 한국에서 먹던 오징어 튀김은 대부분 기다란 오징어 다리가 쭈욱 일차로 펴졌다면 여기서 먹은 칼라마라키아는 동그랗게 말린 모양이었다. 튀김옷이 얇고 바삭바삭했던지라 같이 곁들였던 그리스 맥주가 술술 넘어갔다.


첫날 만족스러운 맛과 양을 경험한 이후 아테네에 머물던 일주일 동안 이 식당을 두 번이나 더 찾게 되었다. 첫 번째는 으레 관광객을 맞이하는 웃음으로, 둘째 날에는 '오 또 왔네!?'라는 말과 동네에 처음 이사 온 주민 대하는 친근함으로, 마지막 날에는 다음날 떠난다는 말을 듣고 '벌써 가냐'는 우정으로 우리를 대했던 직원이 기억에 남는다. 피카츄 동전지갑을 유독 귀여워하며 탐내던 그에게 다음번 아테네 방문에는 '야사스'라는 인사와 피카츄 동전지갑을 선물해볼 요량이다.


제대로 된 그리스 음식을 제대로 즐기면서 아테네를 즐겨보자. "관광객이 꼭 먹어야 하는 그리스 음식 몇 가지"라는 리스트가 아니라, 비록 시작은 가이드북, 트립어드바이저의 추천이었어도 만족스러운 음식으로 교감하는 아테네만의 음식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무작정 그리스 서점에 들어가 보기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있을까. 평소에도 서점만 보이면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춰 섰는데 그리스에서, 아테네에서 더구나 숙소 앞에서 지나칠 수가 있을까. 그리스어는 1도 몰랐지만 책이 가득한 이곳에 무작정 들어섰다. 그리스어로 Βιβλιοπωλείο MIET라고 표시된 이 서점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그리스 중앙은행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점이었다. 책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기념품 코너도 있는데,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의 잡지, 신문, 엽서, 만기 된 채권 등등을 판다. 엔틱한가구들 사이로 오래된 종이향을 맡고 있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1800년대 아테네 한 서점가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무작정 언어를 몰라도, 일단 서점에 들어가라. 그곳에서 도시의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소한 재미로 얻을 수 있는 기념품들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으리라.


걸어서, 트램 타고 아테네를 헤매어보자.

아테네는 서울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어색한 도시이다. 서울은 수많은 고층 빌딩 속에 숭례문, 경복궁의 기와가 보이면 전통과 첨단도시가 하나로 혼재된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라면, 아테네는 고대와 19세기 말 20세기가 어우러진 도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아테네라는 도시가 세계무대에 주조연급으로 등장한 시기와 그 모습이 겹치는 것은 아닐까. 한 때 지중해 세계의 패자로 그리고 18세기 말 독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세계무대에 등장한 아테네. 아테네를 걸어서, 트램 타고 움직이다 보면 아테네가 그 당시 무대에 입고 등장한 의상들이 무엇이었는지 새삼스레 정확하게 느끼게 된다. 맑고 푸르르지만, 어쩐지 조금은 활기 없어 보이는 거리와 공기. 화려한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의 그 어중간한 사이에 껴서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는 여행자가 되어보자.


지금까지 쭈욱 읽어보다 보면 아마 아테네에서 아크로폴리스 외에 더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이도 있을 것이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눈에 띄는 것을 찾다 보면 아마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대와 18세기 후반 19세기, 그리고 지금을 이어주는 오묘한 아테네의 분위기가 아테네만의 매력이다.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를 하나라도 더 어필하려 했다면 비잔틴 박물관, 화폐박물관, 그리스 국립박물관 등등을 이야기하면서 관광지를 하나라도 더 소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만의 그 공기를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아니 한 번쯤 그 분위기를 느껴보기를 원한다면 조금 더 당신의 발걸음을 아테네에 남겨두기를. 그러면 아테네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