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의 마지막날은 어느 날보다도 단순했다. 늦잠을 잤고, 기억도 안 날 꿈을 잔뜩 꿨고, 식은땀이 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아이러니하게 이젠 계속 말하고 움직여야 하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익숙한 병원 천장을 바라보면서 내가 분당에 왔던 날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병원 베드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선수 입장 대기실 같은 곳이다. 하필 수액의 색이 유난히 예뻐서, 떨어지는 방울들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나간 뒤 펼쳐질 자정 이후부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다시 빨려 들어가듯 혼연일체의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 봐도 강사인 것처럼 공부하고, 수업하고, 말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일은 나의 천직이 절대 아니다. 나는 직업과 하나가 된 혼연일체의 삶을 살지만 내게 이 일은 참 재미가 없고, 어떨 땐 죽을 듯 고통스럽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게 멈춘 격리기간 내내 볼 거라곤 스트리밍 사이트뿐이니, 이거 저거 참 많이도 봤는데, 드라마를 보니 배우가 하고 싶었고, 인터뷰를 보니 인터뷰이가 되고 싶었고, 예능을 보니 pd가 하고 싶었고, 아이돌을 보니 (아이돌이 아니라)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보기 좋게 편집된 10분짜리 영상들과 쇼츠들이 범람하는 세계는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나 안다. 본디 혼연일체의 삶이란 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조금만 놓으면 되는데 그게 안돼서 고통으로 기어들어가는 이들의 삶의 하이라이트를 잘 편집하면, 그게 그렇게 재미있게 보인다는 것을. 이런 사람들의 삶이란 하거나 안 하거나의 선택지뿐이라 더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을 너희들이 샘은 강사를 하시겠다는 거예요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당연히 해야지. 몇 번의 지옥을 건널지 알 수 없으나, 일단 가는 거야. 그리고 언젠가 내가 강사인 것처럼 행동하는 이가 아닌 진짜 강사가 되고 나면, 그 순간 나는 정말 '강사처럼'은 안 보일 거거든. 작가 김훈이 말하길,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라 하더라. 사람이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 하더라. 그러니 그때가 되면 '강사 김지연'이 아니라 그냥 이름 없이 반삭에 모시옷에 고무신 신고 지리산에서 안빈낙도하며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