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어강사가 에픽하이의 '혼자라도'를 들었습니다.
내 기억에는 아마도 삼순이가 그랬던 것 같은데, '추억에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라고. 그런데 가끔 도대체 이 지친 하루는 언제 끝나려나 싶은 날,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면 속절없이 무너질(그렇지만 행복하게)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이 노래를 듣는 4분 14초 동안에 나는 잠시 인기가요에서 '평화의 날' 첫 무대를 보자마자 레코드샵으로 달려갔던 교복 소녀로 돌아가고, 지금의 나는 얼마나 계산적으로 변했는지 같은 씁쓸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다가, 결국 살아갈 힘을 얻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럭저럭 이만하면 잘 컸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왜냐면 '태양의 손길이 구름의 커튼 치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첫 벌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교복 소녀는 그냥 설명 못할 벅참으로 느끼고만 말았지만, 지금은 얼마나, 진짜 얼마나 서정적인 표현인지 설명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니까. 그런 자기 긍정만으로도, 다가올 내일이 덜 두려워지니까. 그러니까 추억에는 분명 힘이 있는 것이다. 똑똑한 삼순이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냥 진헌이를 너무 사랑했던 걸로, 그랬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