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피 Nov 23. 2023

공유결합 [共有結合]



 1월 1일 일요일 Note.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떠한 대립점이 있으면 거기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것뿐이다. 대신, 부모도 사람으로서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주자. 아무려 나에게 강요를 하더라도 제3자로서 바라봤을 때처럼 한 사람의 의견으로 넘기는 법을 배우자. 그러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리자. 내가 다른 사람들의 가정사를 바라봤을 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결론은 어느 누구도 나쁘다, 틀리다 말할 수 없다. 어른들도 결국엔 불안한 것이다. 자식이 없으면 불안한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그러는 게 당연한 것이다. 의지하고 싶은 거고, 그 부모의 역할을 내가 해야 할 때가 오는 거고, 점차 그렇게 어른이 된다.” 


  새해 첫날부터 부모님과 의견대립이 있었나 보다. 이날 또 한 번 가장 소중한 이들의 상처를 건들였다. 



3월 13일 월요일 Note.


  이어리를 펼쳤다. “당신을 가장 잘 이해 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한 치의 고민 없이 가족이라 적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 그런지 부모는 귀신처럼 모든 걸 다 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 가족 간의 ‘공유’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가족 간에도 깊은 관계가 유지되려면 공유하고 사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가족이란 게 무엇인가. 아프면 서로 알려 돕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넘기는 게 가족 아닌가. 


  3월 9일 목요일, 전화로 동생의 안부를 물어보지 못해 불안한 마음이 날 집어삼켰다. 동생이 아프다.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찾아온 걸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날이었다. 눈물이 나는 날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안부 공유가 한 가정을 얼마나 안심시키는 일인지 이날 깨달았다. 자식 새끼한테 전화 한 통이 뭐 그리 눈치가 보이시는지. 내 새끼 바쁜 시간 빼앗을까 봐 전화를 못 하신다. 나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에 잠긴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수화기 너머 살을 관통하는 동생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서로가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가 한 마음, 한뜻이었다. 슬픔에 잠겨 다른 건 생각할 여유가 없던 날이다. 


  어느 날 지나가는 채널에 우연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처음 보았다. 아들은 의사이고 남편은 병원장인 한 여사가 한 말이다. “왜 아픈데 가족들한테 말을 안 해? 너한테 가족은 뭐야? 슬프면 같이 도와주고 즐거우면 시시콜콜 같이 웃고 넘기는 게 그게 가족이 해야 할 일 아니야?” 아, 아프면 말을 해야 하는 법이구나. 그래야 괜찮은 삶이고 화목하게 보낼 수 있겠구나. 새삼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그동안 잘못해온 거구나. 가족들을 생각하니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건가 싶기도 했다. 도대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자식다운 자식이 되는 법 같은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는다. 그런 건 알아서 한다. 하루 한 번 이상은 꼬박 전화 드리고, 안된다면 가족 단톡방에 안부 문자 하나 남기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더욱 쉽다. 친구랑 디엠은 그렇게 해대면서 우리 부모님에겐 묵묵부답이었다는 게 반성하게 만들었다. 전화 한 통만 한다면 그날 하루는 부모님이 안심하며 보내실 거다. 걱정 한시름 놓아드리는 일을 한 거다. 그러니 내 것을 내어주는 일, 공유라는 건 상대를 안심시킨다. 

작가의 이전글 말을 아끼자는 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