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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20. 2023

12. 7일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10월 4일

네가 떠난지 7일이 지났다. 네가 떠난 후 날씨는 놀라울 만큼 쌀쌀해졌다. 그래도 난 네가 초가을을 느끼고 가서 기쁘다.


우리 집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너와 함께 한 세월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인지라 생활습관 자체가 너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네가 떠나고서야 알았다. 옷을 침대에 던져놓을 때 네가 없는데 네가 항상 눕던 자리를 피해 던졌다. 이제 네 화장실 모래가 없어 매트 위에 털게 없는데 나도 모르게 탈탈 털었다가 바닥 위로 떨어지는 모래 소리가 들리지 않고서야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 왼쪽을 바라보면 내 인기척에 부스스 일어나 날 쳐다보고 있을 네가 있을까, 베란다 문을 열면 뒤에서 네가 따라올까 기대한다.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면 밥을 달라며 매트 위에 앉아 날 보던 네가 있는 줄 알고 그 자리를 봤다가 텅 빈 것을 확인한다. 출근 전 바쁘게 네 밥을 챙길 일도 이젠 없다. 집에 돌아와 불이 꺼진 어둠 속, 신발장에 서서 네가 달려 나와 날 반기길 기다린다. 그러다 네 캣타워가 있던 위치를 보고 이젠 날 반길 이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이젠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삶이 심심해졌다.


며칠 전 날이 쌀쌀해져서 이불을 바꿨다. 너는 깨끗한 이불을 참 좋아했다. 그 누구보다 먼저 깨끗한 이불을 점령했다. 이번에도 나는 오지 않을 너를 기다렸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불을 바꿨으니 얼른 올라와줘!' 하지만 조용했다. 이불을 세팅하며 돌돌이로 먼지를 터는데 너의 털들이 계속 묻어 나왔다. 거기에 붙은 몇 가닥의 털들을 보고 가슴이 시큰댔다.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햇빛이 굉장히 따사로운 오후, 베란다에서 빨래를 분리하는데 네가 생각났다. 너는 일광욕을 매우 좋아해서 한 여름에도 베란다에 나가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봤다. "버찌야. 버찌야~" 두 번째 외침에서 목이 메어 나는 더 이상 네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가끔 환청이 들린다. 어떤 날은 네가 깊게 잘 때 내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렸고, 또 어떤 날은 네가 화장실에 들어가 모래를 파는 소리가 들렸다.


널 묻어주고 아빠는 꽃씨를 사서 나중에 네 무덤 주변에 씨를 뿌려주라고 했다. 주말에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 어떤 씨를 뿌릴지 알아보는데 백일홍이 노지파종을 해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꽃이 예쁘고, 생명력이 강하며 100일간 꽃을 피워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게 마음에 들어 백일홍으로 결정했다. 그러다 갑자기 꽃말이 궁금하여 검색을 했고 또다시 눈물이 났다.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 그리움 그리고 이별한 친구를 그리워함'이었다. 내가 백일홍에게 끌렸던 이유가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네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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