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Dec 08. 2023

4. 웃으면 복이 와요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8월 31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 같다.

버찌를 향한 내 마음도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버찌에겐 너무 미안하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일주일 정도는 얘 앞에서 엄청나게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슬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이젠 울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온 날 시도 때도 없이 울으니, 버찌 앞에서 그만 울라고 날 타일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본인의 얘기를 해주셨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엄마랑 이모는 손까지 꼬집어가며 눈물을 참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솔직하게 알 수 없어 주변 가족 반응을 살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가족들이 환자 앞에서 울면 '아 의사가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고 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버찌 앞에서 울면 버찌도 다 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알다시피 눈물을 참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숨어서 울고, 씻다가 울고, 일하다 울고, 신호등을 건너며 울고, 버스에서도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실컷 울었다. 다 큰 어른이 길바닥에서 우니 스스로가 더 처량해진 기분에 신나게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의 얘기를 듣고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어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퇴근 후 버찌 얼굴을 보니 사랑스러운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난 "이 깜찍한 녀석!"이라고 소리친 뒤 버찌의 볼을 살살 꼬집었다. 난 버찌가 건강하던 시절로 돌아가 예전처럼 버찌를 대했다. 그런 상황을 버찌도 제법 즐겼다. 저녁을 먹은 후 버찌 옆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저께 동생이 바닥에서 잤는데 버찌가 일주일 만에 우리와 동침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샘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버찌는 내 곁에 눕지 않았다. 대신 정신없이 자다 바닥에 누워있는 날 보곤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봤다. 아무렴 어때! 같은 매트 위에서 자진 않아도 그와 비슷한 거리에 누워 버찌를 쓰다듬을 수 있는 이 상황이 기분 좋았다. 버찌도 끙끙 앓지 않고 옛날처럼 골골송을 부르며 내 손길을 즐겼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며칠 전까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버찌 눈을 바라보면 눈물이 나서 제대로 웃질 못하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연기했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울지 않아서였을까, 버찌 컨디션이 다른 날보다 더 좋아 보였다. 기분 탓이라기엔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내 촉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아침이 되고 버찌는 내 바로 옆에서 누워 날 쳐다보고 있었다. 턱을 쓰다듬으니 물을 마셨는지 털이 축축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녀석... 물을 야무지게 마셨군...' 웃음이 났다. 그랬더니 버찌는 이전과는 다르게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지 않고 씩씩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냥! 하고 울었다. 그리고 골골송을 불렀다. 씩씩한 버찌를 보니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밥그릇을 확인해 보니 밥도 야무지게 먹었다. 전날 자기 전 사료를 푸짐하게 부어줬는데 꽤나 많이 먹었다. 내가 웃으니 버찌도 기분이 좋아진 걸까? 기분이 좋아서 아픔도 조금 가신 걸까?


최애 초록의자 위에서 일광욕


작가의 이전글 3. 버찌적금을 깬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