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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대디 Jan 06. 2024

아이들 겨울방학을 즐겁고 알차게 보내는 방법

기다림의 미학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파리의 연인'이라는 주말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렸다. 국민배우 박신양과 김정은을 주인공으로 한 재벌 2세와 평범한 여자의 러브스토리인데, 신데렐라의 원조 격이라 그런지 당시 최고의 드라마로 정평이 났었다. 평균 시청률만 40% 대가 넘었고 많은 명장면과 대사들이 화제가 됐다. 흥행의 여파인지 등장했던 OST들도 명곡으로 남았다. 나 역시 남자 주인공이자 재벌 2세로 빙의되어 주말마다 TV 앞을 지켰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밤, 스토리 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클로징을 알리는 음악이 흐르면 얼마나 아쉽던지.

 

 


그때만 해도 온 가족이 인기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둘러앉는 낭만이 있었다. 다음 날 학교와 직장은 전날 밤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단연 주된 대화거리였고, 혹여나 본방을 놓치는 사람은 그 날 만큼은 비주류가 되는 걸 감내해야 했다. 일주일을 기다려 본방을 사수한 승자의 여유라고 할까. 당시엔 스마트폰이나 유튜브와 같은 실시간 중계 시스템도 없었기에 정규방송을 놓치면 재방은 장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린 만큼 재미와 감동에 대한 지속 시간도 그만큼 길었다는 반증이겠지. 그때에 우리는 단순한 드라마를 통해서도 작은 기다림을 배울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원하는 영상을 클릭하고, 1분도 되지 않는 릴스와 쇼츠가 난무하는 요즘에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대에 걸맞게 각종 플랫폼과 콘텐츠는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흥미로운 영상들로 넘쳐난다. 언제든지 짜릿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식당에서, 병원에서, 마트에서 심지어는 키즈카페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고 싶으면 보고, 듣고 싶으면 듣고. 많은 아이들이 이러한 신명 나는(?)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즉각적인 재미와 만족을 추구하는 아이들로 성장하지 않게끔 가정에서 환경을 설정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해진 것이다.

 

 

 

현재 유치원을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이 겨울방학을 맞았다. 모든 부모들이 경험하겠지만 이 기간은 참 힘들다. 직장 스케줄도 조정해 가며 자녀를 돌보는 일에 할애하는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줘야 한다는 '방학' 그 자체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명색이 방학인데, 아이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라는 심리적 괴로움 같은 것 말이다. 나 역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고 신나는 방학을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시간과 물질의 한계로 인해 매일매일을 새로운 곳에서 신나게 보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또한 아무리 밖에서 논다고 한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클 수 없기에 방학이라는 긴 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엄청 중요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항상 재미있는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먹기 싫은 밥도 먹어야 하고, 하기 싫은 양치도 해야 한다. 아이스크림과 사탕은 1개만 먹어야 하고 잠이 오지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누나를 위해, 동생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때로는 마음에 없는 양보와 배려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집안의 적막함과 지루함도 느껴볼 줄 알아야 하고 그러한 무료함을 통해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억울함과 좌절감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감정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 전부터 미디어를 보지 않는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다행히 아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주고 있다. 심심한 시간도 스스로 놀 거리 찾으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가고 있다. 삶이 자신들의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해도 인내와 지혜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현실판 우리 집에서는 릴스 쇼츠같은 즐거움은 없지만, 배울 수 있는 건 무수히 많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짜릿한 인생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작고 사소한 일상에도 감사와 즐거움,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나긴 여정을 살아내기 위한 긴 호흡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잘 갖춰 나갈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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