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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찔찔이 Nov 27. 2023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

영화 <검은사제들> 다시보기

이 글은 2015년 어드메, 현실에 없는 잘생긴 신부님들이 나온다고 소문난 영화<검은사제들>이 개봉하자마자 3일 연속 심야로 영화관에 가서 보다가, 이러다 내가 귀신들리겄다 싶어서 무서움을 달래려고 소주 퍼 마시고 이불 속에 누워서 쓴 글이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여전히 필요한 용기를 위해 꺼내보았다.


 주인공 최 부제(강동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개를 무서워한다. 꿈속에서 그는 개와 맞서 싸운다. 하지만 정신을 놓고 싸우다보니 그가 붙들고 있는 건 개가 아니라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여동생이다. 이제 와서 개를 붙잡아봐도, 죽은 여동생은 돌아올 수 없다. 개는 그저 개일 뿐이다. 자기보다 큰 존재를 두려워하는 작은 짐승이다. 이제 최 부제는 개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세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개를 두려워한다.


 그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고 단언하며 구마를 보조하러 나선 젊은 최 부제는 정작 그 악을 마주한 순간 겁에 질린다. 악령이 오천 살이나 먹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공포 그 자체다. 지난날의 패배의 기억.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에 개에 물린 여동생을 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움과 미안함. 악령은 개를 앞세워 그에게 나타났다. 그리곤 말했다. 도망가라고. 그냥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모르는 척 살라고. 그는 도망쳐 나왔다. 그 순간에 도시는 아무렇지 않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녀(박소담)는 잊혀져갔다. 수도회의 어두운 지하실에서 신부님들이 쓴 글귀처럼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지만 잊혀지면 그만이다. 이전에도 사람들은 최 부제처럼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고, 뒤에서라도 돕겠다고 나섰지만 결국엔 떠나갔고 외면했다. 그리고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외로이 싸우는 김 신부(김윤석)를 도덕적으로 음해했다. 보조사제들을 시켜 캠코더를 들이밀어 감시하려는 그들의 치졸한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그들은 썩어가는 살점만큼이나 고립과 낙인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 부제는 다시 돌아왔다. 그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자신을 기다리는 김 신부가 있었고, 숨을 붙잡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김 신부는 최 부제에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동생이 작았을 뿐이라고.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악은 니들도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그리고 최 부제는 이에 기도로 화답한다.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영화 <검은 사제들>의 구마는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최 부제는 악령을 끌어안은 채 그 스스로가 악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마저 물속에 내 던졌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도 그대로였다.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를 던져 싸운다 해도, 김 신부의 말처럼 아무도 몰라줄 것이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영화는 묻는다. 지금 여기의 악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인두겁을 뒤집어 쓴 자 누구인가.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의 이름을 실토케 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존재를 숨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교황께서 한국에 방문했던 지난 여름 2014년 8월, 영화에서 피를 토하며 악과 싸우던 그 날, 세상의 악과 싸우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아무도 구하지 못 한 일이 있었고, 그 일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위로지원금이라며 2000만원을 건넨 일이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만 뭔가 있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수상하다며 감시하고 음해하는 일이 있었고, 이제는 너무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말리는 일이 있었다. 30일이 넘도록 단식을 하며 싸우는 유가족 옆에서 치킨 뼈가 쌓이도록 먹어 치우는 사람 뒤엔 누가 숨어 있을까.


 우리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자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최 부제처럼 신발을 놓고 왔다며 쿨-하게 악과 맞서 싸우러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내 던지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그렇다고 또 다시 개가 무서워 사랑하는 존재들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겐 택시 기사님의 손길 같은 신의 가호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붙잡는 용기도 필요하다. 김 신부님 말씀처럼 가는 길 험난할 것이다. 그러니 지칠 때 기억하자, 우리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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