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옥중수상록,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를 읽고 6
■ 경제적 불평등에 관하여 - 사회는 발전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취업,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장래희망 무엇이냐는 질문에 건물주와 연예인이 꿈이란다. 점심식사와 이어지는 잠깐의 대화에서 화제는 단연 부동산과 주식이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정보혁명의 시대를 지나 AI와 사물인터넷, 3D프린터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결치는 저것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파도인지 인간을 삼키는 쓰나미가 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렇게 사회는 계속 발전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 경제적 불평등을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봅시다. 소득, 교육, 자산(재산)이 그것입니다. 소득이 쌓이면 자산이 되고, 자산은 이자나 지대를 통해 소득으로 바뀝니다. 교육은 소득의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이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자면 자산의 뒷받침이 필요하지요. 세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자식의 자산이 됩니다. 흔히 ‘부모 찬스’라고 부르는 현상을 보면 자산이 어떻게 소득과 학력으로 바뀌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옥중수상록, 164쪽)
► 문재인 정부는 집값 폭등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여러 차례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렇다 할 것이 없지요. (···) 나는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의지 부족에서 찾지 않습니다. (···) 주거 문제를 해결하자면 지금과 같은 집값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이들이 근본적인 전환을 주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토지와 주택을 개인의 소유로 하고 재테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중단시키고, 토지공개념에 기초해 주거가 국민 모두의 권리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자리해야 할 곳이 이런 곳이지요. (옥중수상록, 68쪽)
헨리 조지의《진보와 빈곤》을 들춘다.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생산량은 임금(노동), 지대(토지), 이자(자본)의 합이다. “임금과 이자는 지대를 공제하고 난 후의 잔여에 의해, 즉 무지대 토지에서의 생산물 또는 사용 토지 중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의 생산물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중략) 토지가치가 같이 상승하면 생산력은 지대로 흡수되어 버리고 임금과 이자는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총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지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가치는 토지에 집중된다. 사회적 열매가 토지 소유자에게 모두 돌아가는 상황에서 물질적 진보가 고도로 이루어지더라도 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을 면치 못한다. 따라서 헨리 조지는 토지의 독점을 막기 위해 토지를 공동소유로 할 것과 근로소득이나 자본소득(이자)에 대해 과세하지 말고 토지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자는 토지단일세(single tax)를 주장한다.
“형식상 토지 소유권은 지금처럼 개인의 수중에 그대로 있다. 아무도 토지소유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토지 소유량에 대한 제한도 없다. 그러나 국가가 지대를 조세로 걷기 때문에 토지 소유가 누구의 명의로 되어 있건 토지 소유량이 얼마가 되건 간에 토지는 실질적으로 공동재산이 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토지 소유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임차인이 일정지역에서 상권을 형성하고 가치를 드높여 놓으면 임대인이 임대료를 대폭적으로 올린다. 임차인은 높은 차임을 견디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임료 부담이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생각하면 현상의 문제점이 잘 이해된다. 물론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 주장은 지금의 조세체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의 정신은 이어받을 만하다. 애초에 토지는 누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자연에 원래 그대로 존재했던 것이며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의 배타적 소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로 인해 생긴 이익은 불로소득이며 소유자가 투입한 노력을 제한 초과이익의 대부분을 환수해서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입법조치를 하였으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일부 위헌을 받음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잃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수십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르지 않게, 한편으로 너무 낮아져 가계 부채문제가 폭발하지 않는 차원에서 부동산을 관리대상으로 생각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입법과 집행에 있어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고의적인 방해와 방조, 방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입법은 진보적 정부만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이후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 때문에 전월세 대란이 일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을 때 당시 정권을 잡은 노태우 대통령이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의 토지공개념 3법을 제정했었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따른 사회적 폐해는 진보, 보수의 가치문제가 아니라 부의 배분에 관한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금융위기, 부동산 거품이 꺼져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는 등 - 폭탄이란 말은 보유세에 붙일 것이 아니다 - 외부적 영향에 따른 비자발적인 급격한 변화보다는 선제적으로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근원적인 개혁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수요자에 대한 공급확대와 더불어 다수 부동산소유자에 대한 보유세를 중과하고 실효세율을 주요 국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마침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고가 치러졌다. 두 곳 모두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의 민심에 대해서는 차후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서울의 경우 부동산 가격상승과 LH직원들의 내부정보를 통한 부동산 투기가 내 집 마련에 민감한 젊은 층의 심리를 자극했을 것이다. 부동산 자산에 대한 시민들의 욕망이 검증과정에서 야당 후보들에 대해 제기된 여러 논란보다 표심을 더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문제는 대부분 대단지 아파트와 관련되므로 건설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자, 투기세력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주식시장처럼 시장교란 행위를 처벌하고 감독하는 감시기관도 설치해야한다. 향후 이루어질 헌법 개정에서 토지공개념을 재산권 제한의 근거로 명시해 위헌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입법자가 해야 할 일이다.